말씀묵상

아무개 예수 거룩한 예수 - 천제욱 요셉 사제(영주교회)

먹보91 2022. 12. 30. 16:09

아무개 예수 거룩한 예수

 

처음에는 아무개에 불과한 평범한 이름, 막동이 개똥이, 끝순이로 불리듯 그저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거룩하지도 비범하지도 않은 이름, 그냥 아무개의 아들 아무개였습니다. 형제와 누이는 누구누구이고, 고향 사람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이들과 어울렸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갑자기 죽임을 당했는지 몰랐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소문만 무성했습니다. 신성모독을 했다. 혹세무민하였다. 안식일규정과 정결법을 여러 차례 고의로 어기고 불법을 자행했다. 불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을 선동하여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등등 소문이 사실인 양 동네방네 퍼졌습니다. 군중들은 그저 떠도는 말들이 사실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무개가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며 헛소문에 헛소문을, 추측에 추측을 더하기만 했습니다. 추측이 기정 사실이 되자, 예루살렘 산헤드린은 이때다 싶어 아무개를 전격 추포했습니다. 그리고 아무개는 단 하루 만에 극형을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십 수 년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때부터인가 몇몇 사람들로부터 아무개가 무슨 말을 했고, 무슨 일을 했고, 누구와 함께 울고 웃고, 어울렸는지사무친 기억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말은 고백이 되고, 고백은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개 이름 앞에 거룩한이란 말이 붙었습니다. 그 아무개의 진실, 신념, 삶이 통째로 복원되기 시작했습니다. 거룩한 삶이 무언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와 진실을 정확하게 알고, 기억하고 고백하는 것은 거룩함에 가담하는 일입니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헛된 추측이 신념이 되는 일이 허다한 오늘 이 세상, 이 나라, 이 시절에 거룩함은 어디에 있으며, 또 진실은 어느 누구의 이름 앞에 남아 있을런지요?

 

천제욱 요셉 사제 (영주교회)

 

Miniature Christmas village in Strasbourg, Fr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