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라는 책의 저자인 법정스님을 다 안다. 그는 2010년 3월11일 입적하였다. 그는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에 손 사레 쳤다. 그런 연유로 입적한 후에야 가장 높은 대종사라는 품계를 조계종은 수여했다. 그러나 그의 입적영정 앞에는 그가 유언으로 남긴 “비구법정” 단 네 글자만 덩그렇게 있었다. 대원각 주인인 김영한은 “무소유” 책을 읽고 법정스님을 찾아가 대원각을 봉헌했다. 그리고 길상사(吉祥寺)로 바뀌게 된다. 95년 대원각 재산가치가 일천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법정스님이 유일하게 맡은 직책은 이 길상사의 회주였고 입적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대중들에게 법문을 하였지만, 회주이면서도 단 한 번도 그곳에 묵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해 “무소유” 책을 출간하고 나서 더 깊은 강원도 오대산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옛 화전민의 집이었던 그곳에서 돕는 상좌(上佐)스님 없이 혼자 모든 생활을 하면서 수도에 정진했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에게는 서슬이 퍼렇게 냉혹했지만 타인에게는 따뜻한 분이었다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리고 그를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한다. 그의 삶을 보면서 왜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불교로 귀의하며 아직도 그를 그리워할까? 한권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는 조계종에서 권위를 내세우고 계율이나 종단법을 지키라고 강요할 수 있었다. 치밀하게 조직을 관리하고 거창한 포교계획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 반대의 길로 갔다. 그는 여전히 가난한 길로 갔고 흔한 가사장삼도 잘 걸치지 않고 입적할 때는 먹물 승복만이 그를 가리고 있었다. 소리 없는 그의 삶은 우레가 되어 사람들에게 울린다.
대중들은 여기에 탄복한다. 가장 낮은 곳의 삶을 살아낸 스님의 모습에 감동한다. 그의 글과 법문을 읽고 들으면 세상에 있는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어떤 글이나 말이 시시하게 느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의 삶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예수제자의 삶의 모습이다. 예수제자의 삶을 살아낸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러면서 기대해 보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또 성공회 안에서 법정이라는 사제가 나타나길 꿈꾸어 본다.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어 있음”과 “시례야(是禮也)” - 마르 13:24-37 - 채창완 야고보 사제(제주우정교회) (0) | 2023.12.02 |
---|---|
그분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는 삶 (마태오복음 24:31-46) - 유용숙 안나프란시스 사제 (0) | 2023.11.24 |
기다림 각성 - 마태 25:1-13 (노현문 다니엘 사제) (1) | 2023.11.11 |
행복한 이의 삶 - 마태 5:1-12 안균호 예레미야 사제(기장교회) (0) | 2023.11.04 |
이웃을 향해 사랑이 흘러가도록(마태 22:34-45) - 유명희 테레사 사제(거제교회) (1) | 2023.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