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희망 – 마르 4:26-34 희망적인 소식을 듣기가 어려운 요즘입니다. 국내 정치와 안보 문제, 경제적 어려움, 세계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는 분쟁과 무력 충돌, 전 지구적으로 휘몰아치는 기후 위기로 인한 이상 징후가 연일 뉴스를 통해 전해집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천민자본주의의 득세로 부유함이 삶의 질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고, 애초에 공정하지 못한 사회임에도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실패자라고 깔보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쥐어짜 타인에게 ‘있어 보이는’ 삶을 전시하지만, 보여지는 것과 현실의 괴리를 견디지 못해 우울과 불행의 늪에 빠지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너진 개인은 생존을 위해 ..
희망을 품고 현실적으로 성육신은 희망을 품으면서도 현실을 정직하게 응시하게 해줍니다. 성육신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곳을 비추는, 그렇게 하기로 작정한 빛을 보았음을 뜻합니다. 새로운 세계의 여명이 밝아 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환하지는 않습니다. 성육신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에 관한 가르침이면서 또한 무고한 한 사람이 골고다에서 잔혹한 십자가형을 받은 것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십자가 발치에 서기까지는 하느님이 성육신을 통해 뜻하신 바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 알기 어렵습니다. … 그렇기에 교회는 우리 가운데 여전히 슬픔이 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사려 깊게 기쁨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교회가 여전한 분투와 시시때때로 우리를 넘어뜨리는 패배를 정직하게 마주하지 않고 마냥 행복한 얼굴로 발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