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의 삶 - 마태 5:1-12
한 때는 순교나 성인에 대한 열의와 동경의 마음이 있어서 선교를 위해 장렬히 산화하자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차츰 현실적 사고와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순교니 성인이니 하는 말은 나와 관계없는 남의 얘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뜨거움은 식고 헌신보다 안위가 먼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 보니 신앙의 삶이 적당히 착하게 살아가는 정도의 교양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재림, 종말에 대한 신앙이 먼 미래의 일이거나 혹은 이상적 기대 정도로 전락한 느낌입니다.
다가온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긴박하고 비장한 준비의 마음, 항상 깨어 준비하는 마음 없이 관성적으로 오늘을 맞이하고 있는 메마름을 봅니다.
왜 이렇게 무감각해진 것일까요? 기다림이 길어진 탓일까요? 아님 애초에 하느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그저 그랬던 것일까요? 어쩌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준비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합니다.
순교니, 성인이니 하며 너무 높은 기준을 세우다보니 나와는 무관한 차원의 것, 뭔가 특별한 사람의 것으로 넘겨버리며 살아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 있는 삶, 행복한 삶, 하느님 나라의 삶은 도달할 수 없는 그렇게 높은 차원의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옳은 일을 갈망하는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옳은 일을 하다 박해 받는 사람 등. 우리가 완벽하게 그 기준에 매일 매순간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 마음들이 다 우리 안에 있고 또 우리가 어느 때 한 조각만큼은 그런 사람의 모습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 순간 작은 일상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살아간다면 작은 미소하나, 작은 친절하나, 작은 실천하나가 모여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깨어있음이 되지 않을런지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안균호 예레미야 사제(기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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