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어둠 속 저편에서 불어오는 소리 -루가4:14-21
하나의 성스러운 문자가 소리로 울려 퍼질 때, 절대 어둠 속에 바람(πνεῦμα)이 일었습니다. 잊혔던 옛날 기억들을 소생/소환시키고, 정결과 정화와 각성과 순수를 가능케 하는 문자는 사람들의 피부로 전해집니다. 실체가 보이고 그 실체의 그림자는 문자가 소리가 될 때마다 춤을 춥니다. 문자는 그냥 문자가 아닙니다. 구원의 사전입니다. 도저히 기억이 안 날 때, 까마득한 자국으로만 남아 있을 때, 문자에 대한 열망으로 인한 사전 찾기는 구원이 됩니다. 어둠이라고 포기하려고 할 때, 사전 속 언어는 구원처럼 나의 기억을 새롭게 상기시켜줍니다.
옛날 언어가 귀환하는 것이 무슨 대수일까 싶을까마는, 언어가 도래하는 그 시공간은 하나의 언어적 사건을 통한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사건을 발생시키고 실제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하나의 언어가 낭독된다는 것은 과거의 바람, 과거의 불, 과거의 정신이 지나가버린 것이 아닙니다. 다시 모입니다(religare; relegere). 다시 연결되어서 사람들 마음에 정박합니다(religo). 그래서 옛날 언어가 낭독되는 시공간은 구원이 도래합니다. 해방, 기쁜 소식, 풀림, 밝음의 사건이 일어나는 현실 속에서, 그 언어는 과거의 언어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언어가 되어 절대 어둠 속에 바람을 불러일으킵니다. 존재의 언어가 낭독되어, 옛날 언어가 소리가 되어 누군가에게 들린다는 것은 들음/들림의 사건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언어가 이루어졌다, 언어가 사건이 되었다, 말이 현실이 되었다는 그 직접성을 드러내는 바람의 기적입니다.
절대 어둠 속에서 하나의 성스러운 언어는 포효를 합니다. 저 멀리 감춰진, 잊힌 언어들을 끄집어내어 이 절대 어둠을 빛으로 밝힌다는 것은 언어의 초월성이요, 언어에 담긴, 옛날 언어에 감춰진 바람의 능력입니다. 언어가 바로 그곳에서 그 언어를 이루려고 하는 언어의지는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언어의 성스러운 자기 자신의 힘입니다. 존재의 입을 통해서 문자가 낭독될 때 바로 그 성스러운 언어의 힘을 드러낸 것입니다. 물론 문자는 낭독하는 존재는 자기가 지닌 바람의 실체적 힘을 입은 것입니다. 바람의 실체적 힘 또한 옛날 언어와 더불어 사람들에게서 멀리 잊힌 것이지만, 한 사람과 함께 하는 바람은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도록 한 것입니다.
잊힌 언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 말이 현실이 됩니다. 언어가 잊히고 죽은 언어가 되는 이유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이 단지 소리로만 전달되어 흩어지면 소용이 없습니다. 바람에도 견뎌내고,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 견뎌냄. 그럴 때 말은 진정한 소리가 되고 울림이 되어 누군가의 영혼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김대식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서대구교회)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따르십니까? – 마르 6:53-56: 황윤하 라파엘사제(동래교회) (0) | 2025.02.07 |
---|---|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신 예수 - 루가 2:22-40, 박준헌 미가 사제(마산교회 보좌사제) (1) | 2025.01.31 |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 - 요한 2:1-11 (0) | 2025.01.18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루가3:15-17,21-22(박용성 바르나바 사제(서대구 교회)) (0) | 2025.01.11 |
말씀을 드러내는 삶 - 유용숙 프란시스 수녀사제 (1) | 2025.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