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자유에 맞서기 – 루가 6:17-26
말과 사슴이 싸움을 벌였다. 말은 사냥꾼을 찾아가 사슴에게 복수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사냥꾼은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정말로 복수하고 싶거든 내가 고삐로 널 조종할 수 있도록 입에 마구를 채우고, 사슴을 쫓는 동안 내가 편히 앉도록 등 위에 안장을 얹어야 해.” 말은 기꺼이 동의했다. 결국 말은 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사슴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말은 사냥꾼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와요. 입과 등에 채운 것도 풀어주세요.” 하지만 사냥꾼의 대답은 이랬다. “이봐,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이제 막 마구를 채웠잖아. 난 지금 이대로가 좋단 말이야.” - <말과 사슴 그리고 사냥꾼>
이솝 우화에 나오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사냥꾼은 말에게 적당한 조건을 내겁니다. “너의 등에 안장을 채우게 해주면 널 도와줄게.” 그렇게 말은 자신의 등을 내어주고 입에 마구를 채우는 것을 허락합니다. 눈앞의 힘을 획득하기 위하여 더 큰 힘에게 종속되는 결과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말은 사냥꾼의 말, 노예가 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두가지 교훈을 확인합니다. 먼저는 ‘말의 어리석음’이겠습니다. 순간의 권력을 위하여 자신을 무너뜨리는 힘에 굴복한 어리석음 말이지요. 다음으로는 ‘사냥꾼의 교활함’이겠습니다. 말의 제안을 받자마자 사냥꾼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애초에 말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지요.
오늘 루가의 복음서는 마태오 복음서의 산상설교 ‘팔복’이야기와 묘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본문입니다. 이 두 본문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8가지 묘책”이란 이름의 자기계발서처럼 읽히곤 합니다만, 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읽기를 제안드립니다. 자신의 설교를 듣고 있는 군중들에게 예수님이 말하시고 계신 장면으로 말이지요. 굶주리고 헐벗고 어디가서도 내놓을 것 없는 이들이 예수를 좇아 그의 말을 듣고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는 큰 소리로 말하십니다.
“너희는 행복하다.”
자신의 이름조차 없는 이들에게 예수는 ‘행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십니다. 각자의 곪아버린 형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권면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는 그들 자체가 이미 ‘하느님의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예수는 ‘부요한 사람’들을 지칭하여 말합니다. 충분히 행복이라 이름지어질 수 있는 이들을 이용하여 자신을 이롭게 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불행’이라 이름짓지요.
흉흉한 세상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외침을 되뇌입니다. 우리 스스로 사냥꾼에게 우리의 등을 내어주지는 않아야겠습니다. 이미 ‘하느님의 행복’임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사냥꾼의 자유가 나의 자유라고 속지 않아야겠습니다.
- 이신효 스테파노 사제(주교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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