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성찰과 참 자유 – 루가 6:39-49
오늘 복음서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왜곡하며 백성을 억압하는 이들을 비유로 경고하십니다. 그 경고의 대상은, 하느님의 은총이어야 할 율법을 사람들을 옭아매는 수단으로 삼는 율법주의자들입니다. 또한,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도구로 삼아 타인의 삶을 억압하며, 수많은 영혼을 자유가 아닌 고통과 눈물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자신이 율법 실천의 표준인 양 당당하게 살아가며, 하느님의 이름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의 눈과 귀와 마음이 닫혀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과연 이런 이들에게서 어떤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단지 과거 율법주의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저마다 주관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는 삶의 기준이자 원동력이 되지만, 때로는 지나친 고집과 왜곡된 생각으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념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제한된 이해와 편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함으로써 타인과의 소통을 가로막고, 갈등을 초래하게 됩니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굳어진 사고와 집착으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 하느님께 있어야 함은 언제나 강조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현재 나의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뜻을 삶의 분명한 기준으로 삼으면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루가 6:43)는 말씀처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세상 속에서 풍성히 드러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내면에 율법주의나 극단주의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 하느님이 계십니까? 우리의 사고와 태도는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까?
자신의 생각과 주장에만 사로잡혀 나와 주변의 관계를 단절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느님께 겸손히 여쭙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김대성 여호수아 사제(모두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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