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과 위태로움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 – 루가 13:31-35
‘나’가 무너지는 경험은 인간에게는 참으로 벅찬 일입니다. 마치 이것은 조그마한 퍼즐 조각으로 겨우겨우 완성된 그림이 순식간에 흩어져버릴 때 느끼는 허망함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과거’에 머물고 싶어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세상 온갖 풍파에도 기어이 그리고 애써서 맞춰 놓은 나의 퍼즐 작품을 지키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나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실’, ‘진리’, ‘변함없음’, ‘선’, ‘정상’, ‘신념’으로 둔갑합니다.
아쉽지만, 이러한 생각은 허상에 가깝습니다. 나의 생각이나 경험이나 시간이 말해준 것을 ‘확신’하고 의존하려는 태도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내가 애써 지키고 싶은 고귀한 가치로 해석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혼란스럽고, 어느 하나도 예측할 수 없으며, 정상적이지 않은 일들 투성이입니다. 나의 고귀한 신념을 공격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습니다. ‘다름’, ‘흔들림’, ‘불안함’, ‘비정상’들 말입니다. 우리는 이 두 현실, 즉 ‘내 머리 속에만 있는’ 현실과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내 주변의’ 현실이 주는 간극 사이에 수없이 갈등하지요.
그런데 바로 이 지점입니다. 우리가 불안함과 위태위태함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 말이지요. 제국 로마, 유대 종교권력, 민족주의 세력 그리고 사막의 수도자들까지 시시각각 변동하는 혼란 한 가운데에서 예수는 그들 사이의 아주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신의 길을 걷습니다. 이 꿋꿋한 태도는 하느님 나라라는 원칙에 있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좀 더 솔직히 그분의 삶의 궤적을 좇아본다면, 그의 태도는 자신이 딛고 서있는 땅에 있었고, 자신이 먹는 밥에 있었고, 자신이 만나는 냄새나는 사람들에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많은 세력들이 자신을 향해 내뱉는 비난에 반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신더러 ‘원칙이 없는 자’, ‘술꾼’, ‘율법을 어기는 자’ 그리고 ‘하느님을 모독하고 대적하는 자’라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는 이런 예수가 참 좋습니다. 온갖 잡다한 것들이 덕지덕지 붙은 그의 얼굴이 더욱 매력적입니다. 지극히 편협하고 감성적인 그가 참 좋습니다.
이신효 스테파노 사제(부산주교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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