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은혜 – 루가 13:1-9
본문에서 어떤 포도밭 주인이 포도밭에 있는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기를 3년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열매를 맺지 못한 것에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듯합니다.
나무 중에서 무화과나무는 수세가 좋아서 참 잘 자라고 열매도 잘 맺습니다. 그런 나무가 열매를 3년이나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 주인은 무화과나무가 이젠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지기에게 “이 쓸모없는 나무를 베어버려라.” 말합니다. 마치 루가복음 13장 5절에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라고 하는 듯 …
그런데, 무화과나무를 돌보던 포도원지기는 주인과 생각이 다릅니다.
13:8 주인님, 이 나무를 금년 한 해만 더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13:9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 때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베어 버리십시오.
주인과 포도원지기는 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두 사람 다 애정 어린 관심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주인이 포도원지기의 생각을 받아들여 한 해 더 유예를 해 줬는지, 베어 버렸는지 우리에게 정보를 주지 않지만, 제 생각은 이 주인이 포도원지기의 의견을 수용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나무를 베어 버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반면 3년 동안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포도원지기는 나무를 베어 버리는 쉬운 일이 아니라,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돌보고 가꾸어 열매를 맺게 하려는 그 어려운 일을 택했습니다. 열매가 목적인 나무에서 열매를 거둘 수 없다면 포도원지기로서는 정말 큰 낭패입니다.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는 건축재나 땔감으로도 별 신통치 않습니다. 오로지 열매를 목적으로 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바라보며 열매를 기다리는 주인과 포도원지기의 심정은 어떨까요? ‘저걸 그냥 베어 버려?’ 하는 마음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성공회 사제로 25년을 지내면서 제 자신에게 또 우리 교우들에게 열매 맺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지만 아시다시피 열매는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포도원지기로서 제 주인에게 “한 해만 기다려달라”고 우린 올해도 청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좋은 거름을 충분히 하면서 열매 맺기를 기다려 봐야겠지요.
거름을 하고 수고한 덕에 올해 열매가 하나 둘 맺힌다면 열매 맺지 못했던 무화과나무가 얼마나 소중할까요? 열매 맺지 못한다고 그냥 베어 버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할까요?
성경원 요한 사제(문화선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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