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뒤, 곧 나의 자리 – 마르 8:31-38 예수께서 당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 가운데 무엇에 집중하게 됩니까? 내 안의 무엇이 그 말씀으로 향하게 하는지 곰곰이 나를 들여다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항의하는 베드로에게 당신의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뒤로 물러간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옵니까? 천천히 깊게 호흡하며, 성령께서 사람의 일에 끌려다니는 나를 예수님의 ‘뒤’로 인도하여 주시길 기다려 봅니다.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의 뒤를 바라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은 깊은 고독이 뒤따르는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피하고 싶은 이 길을 걸어 예수님의 뒤로 물러..
희망을 품고 현실적으로 성육신은 희망을 품으면서도 현실을 정직하게 응시하게 해줍니다. 성육신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곳을 비추는, 그렇게 하기로 작정한 빛을 보았음을 뜻합니다. 새로운 세계의 여명이 밝아 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환하지는 않습니다. 성육신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에 관한 가르침이면서 또한 무고한 한 사람이 골고다에서 잔혹한 십자가형을 받은 것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십자가 발치에 서기까지는 하느님이 성육신을 통해 뜻하신 바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 알기 어렵습니다. … 그렇기에 교회는 우리 가운데 여전히 슬픔이 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사려 깊게 기쁨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교회가 여전한 분투와 시시때때로 우리를 넘어뜨리는 패배를 정직하게 마주하지 않고 마냥 행복한 얼굴로 발랄하게..
우리는 새 계약 공동체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 아들로 믿는 사람들,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이를 교회라고 합니다. 복음서 말씀은 교회 공동체의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교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짓게 하는 것에 대해 말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권면하고, 듣지 않으면 두 세 사람이 함께 가서 말하고, 그것도 듣지 않으면 교회차원에 권면하지만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며 출교시키고 접촉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신명기19:16~20 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18절에서는 교회에서 적절한 절차를 밟아 교인을 받아들이거나 출교시키는 것을 하늘에서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합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시작되는 하느님 나라의 현장입니..
주님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모든 사람은 나에게로 오라" 하시며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내 멍에를 매고 나에게서 배우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믿음을 칭찬하셨던 사람은 자기 의지를 가지고 뭔가를 할 수 있는 "소년"이 아니라, 부모의 도움이 아니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 였습니다.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시며 완전하신 주님께 내 짐과 멍애를 의탁하고 그분을 신뢰할때 평안과 안식을 얻습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께 내 짐과 멍애를 의탁하며 홀가분하게 살아갑니다. 이번주일은 유용숙 프란시스 수녀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서대구교회 김민식 부제님께서 감사성찬례를 집전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