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섬기는 사람 - 마르 9:30-3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물으십니다.사실 이러한 논쟁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지내던 내내 각자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유혹이며 욕망에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감추며 은근히 경쟁하고, 겉으로는 진정한 형제애를 사는 척한 결과입니다.첫 자리, 높은 자리와 영향력, 주도권을 쥐는 자리인 “가장 큰 사람”에 집착하고 있을 때, 주님은 다가올 십자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고난받는 종’으로서 자기 생명을 내어줄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제자들은 스스로 스승이 되거나 높은 사람이 될 것만을 생각합니다. 선생은 섬김을 말하고, 제자들은 지배와 통치를 생각합니다.인간은 본성적으로 “큰 사람”이..
그분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는 삶 마태오복음 24 : 31 - 46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합니다. 옷깃을 여미는 시기로 예수께서 걸어가신 발자국을 잘 따라갔는지 내 발자국을 돌아봅니다. 예수께서는 섬김의 행위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었는지 살피십니다. 마태오 복음은 참된 행복 선언을 시작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우리에게 안내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현존하시는 당신의 참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 모습은 세속 권력의 중심이 아닌, 하느님의 정의가 올바로 실현되는 곳인 하느님 왕국의 모습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王에 버금가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쌓아 올린 명예와 부, 혈연관계, 자신도 모르게 굳어진 고집과..
사라지지 않는 희망 오늘날 우리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의 구조 안에서 살아갑니다. 부와 권력이 힘 있는 소수에게 집중되는 가운데, 힘이 없는 다수에게 세상이란 단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미래가 불투명하고 희망이 사라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허우적대는 우리는 고통으로 울부짖는 이웃의 외침에는 귀를 닫습니다. 세속적인 힘과 질서에 순응한 우리는 ‘나만 고통 받지 않으면 괜찮아’라고 자위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약자가 강자에게 충성하는 세속적이고 불완전한 형태의 거짓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강자가 약자를 섬기고, 겸손하게 자신을 내어주며, 차별 없이 서로의 부족함을 ..
요즘 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높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아니오.”라는 대답을 듣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이루고 싶은 꿈, 되고 싶은 모습은 서로 다를지 모르지만 어떤 형태로든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자 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부를 기반으로 높은 위치에 오르고자 하고, 누군가는 권력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하고, 누군가는 지식, 학식으로 오르려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사회, 문화, 정치, 경제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종교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납니다. 어쩌면 사람의 본성은 높아지려는 마음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높아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할까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높아짐에는 자유로움이 따릅니다...
한국성공회 선교 130주년 기념주일을 맞아 김요나단 신부님께서 특강을 해주셨습니다. "성공회 교회와 평신도 사역"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평신도 사역과 사제의 사역이 급이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데 평신도도 사역에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평신도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매주 공동예배에 참석하고 이땅에 하늘나라 확장을 위해 기도하고, 봉헌하고, 힘써 일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큰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기도하는 사람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평신도의 사역은 섬기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친히 섬기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이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