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를 위해 내어놓는 삶 – 마르 10:17-31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떠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부터 떠나는가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입니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입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최승자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중의 발췌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어떤 사람이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묻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그 사람은..
예수님처럼 먹히는, 나누는 생명으로 신앙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크고 작은 도전을 받습니다. 신앙의 길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샘으로 가는 길, 그 길에는 수많은 유혹이 즐비합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을 욕망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환경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선택하는 권리는 자유의지지만, 썩어 없어질 양식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살리는 양식을 선택하라는 복음 말씀은 우리 가슴을 두드립니다. 오늘 전례 독서는 탐욕을 양식으로 삼아 돈과 권력(우상)에 눈이 멀어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말고, 생명의 길을 선택하여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참 신앙의 길을 걷기를 요청합니다. 그 길에서 먹을 양식은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이상의 것이 항상 존재합니..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 속에서, “새로”, “다시”라는 단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하거나 혹은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실천은 오늘 말씀 말미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성부께서 성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성자를 믿고 따르는 인간은 구원의 길로 가며, 이 여정 안에서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신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결국, 삼위의 하느님께서는 “함께” 항상 새롭게 거듭날 것이며, 이를 통해 삼위의 하느님께서는 하나임을 드러낼 것을 생각해봅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일구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또한 구원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일 수도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