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어떤 성직자가 되고 싶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잘 듣고 잘 묻는 성직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주저함 없이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작년 한 해 동안 나의 지나온 영적 여정을 돌아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생각이었고 특히 영적동반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러한 갈망은 때로는 간절하게 때로는 긴 호흡 속에 나의 기도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대답을 내가 들으면서 스스로 놀랐다.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분명하게 말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굴곡이 많았던 나의 영적여정 속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고난의 시간이 찾아오면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사람들과 상황을 탓하며 포기와 회피를 택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생각과 마음을 물어주고 아무런 판단 없이 경청해주며 내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동행해 줄 누군가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지금도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잘 듣고 잘 묻는 영적 동반자가 되고자 영적동반훈련을 시작하게 되면서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잘 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기도하며 훈련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기도 가운데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나의 영적여정 특히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고난의 시간에 대한 너무나도 견고한 나의 생각과 판단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결코 잘 들을 수 없고 잘 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훈련을 시작하면서 제출해야 했던 영적 자서전을 쓰면서 나는 그동안의 내 모든 삶을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오신 하느님에 대한 깊은 감동과 경외심으로 가슴 벅찼었다. 특히 숨기고 싶거나 후회되는 고난의 순간마다 나를 돌이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자리에서 그분의 빛나는 영광을 볼 수 있었고 내가 무엇을 이루거나 무엇이 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내 존재에서 그분의 영광의 빛이 드러났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큰 울림이 들려왔다.
“너 자신과 너의 삶에 대해서 네가 판단하지마라.”
사순 5주일을 맞이하며 오늘 듣게 되는 예수님의 고백이 나를 더욱 깊은 곳으로 인도한다. “아니다. 나는 바로 이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온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고난과 지금의 고난 그리고 앞으로의 고난에 대해 예수님의 이 진하고 깊은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고백으로 누군가의 진정한 영적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알아차림과 비움으로 깊은 곳에 머무른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게 될 영적 동반자들을 뜨겁게 불러본다. 벗들이여! 우리의 고난 가운데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으며 함께 걸어갑시다!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
심미경 아가타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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