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본질은 하나지만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인격으로 드러나는 하느님이시다. 삼위일체는 신비다. 인간은 삼위일체 신비를 온전히 알 수도 이해도 설명도 할 수도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일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였다. 예수님의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의 사랑을 경험한 후 성령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예수님이 사신 삶과 아버지의 사랑으로 살게 되었다. 초대교회는 그들이 경험한 삼위일체 하느님을 선포하고 믿었다.
어거스틴은 삼위일체 신비를 신학적인 이해로부터 삶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대상과 사랑 그 자체는 서로 분리할 수 없다. 사랑과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와의 관계에서 삼위일체 신비를 이해하려고 했다. 사랑이 사랑을 사랑한다. - 사랑을 만나고 사랑을 살고 사랑으로 돌아간다. -말하고 싶다. 이것은 분명히 세 존재이지만 일체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은 주는 자와 받는 대상과 사랑 그 자체가 함께 공존한다. 그 사랑은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대상과 본질적으로 하나로 있을 수밖에 없다.
부부 일심동체란 말도 아내와 남편은 분명히 독립된 두 개체이지만 부부는 한 몸이라고 한다. 성부, 성자, 성령도 분명히 독립된 개체이지만 그 본질이 한 몸임을 신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저 개인적으로 삼위일체 신비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자신의 경계를 허문 분으로 하느님과 예수 자신이 하나라고 주장한다. 예수안에 하느님이 하느님 안에 예수가 존재함으로 두 독립체가 한 몸을 이룬다. 예수의 사랑으로 사는 나에게 예수는 나의 하느님이다. 성령님은 인간과 하느님의 경계를 허문 분으로 성령님이 인간 안에 인간이 성령 안에 한 몸을 이룬다. 성령님이 부어주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 성령은 나의 하느님이시다.
성부는 외아들을 내어주는 사랑을, 예수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은 사랑을, 성령은 임마누엘의 사랑을 베푸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그 본질이 사랑으로 하나이듯이 우리도 성령 안에서 보이지 않는 주님과 보이는 인간이 사랑으로 일체의 신비를 깨닫고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독생자로서 사랑이 무엇인지 인간에게 알려 주신 분이시다. 이 사랑을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사시는 분이 성령 하느님이시다. 삼위일체 신비를 경험하는 팩트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깨달음이다.
한성규 발렌틴 사제(거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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