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침묵피정에서 부드럽지만 너무도 단호한 하느님의 초대를 듣고 돌아왔다. 그것은 ‘일상에서 하느님의 현존으로의 초대’이다. 하느님께서는 기도, 예배, 피정과 같은 특별한 순간뿐만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차원에 하느님의 현존이 스며들기를 요청하셨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는 삶이 곧 교회의 첫 출발점이면서 그 자체로 온전한 교회라는 깊고 강렬한 울림은 다시 한 번 나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해주었다.
하느님의 현존을 놓치고 하느님과 분리된 자기정체성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거짓자아’이다. 오늘 예수께서 참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씀을 들으며 하느님과 분리되어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 판단, 평가, 분석을 만들어내는 내 안의 거짓자아를 떠올렸다. 내가 거짓자아를 분별하지 못할 때 그것이 만들어내는 것들을 나와 동일시하면서 내 안의 참자아를 더럽히게 되고 함께 하는 모든 이들과 이런 왜곡된 모습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이런 거짓자아가 만들어내는 것들이 오랜 시간 쌓이면 내 안의 법이 되고 전통이 되어 자신만의 왕국이 세워진다. 이 견고한 왕국은 밖으로 확산되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노예로 삼아 가두어두고 지배하려고 한다. 나는 일상에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기 위한 나의 지향을 확고히 하며 이번 피정에서 내 안의 거짓자아를 분별하고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기 위해 수련한 일상 기도들을 하나씩 실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첫 번째가 손을 씻을 때매다 하게 되는 기도이다. 지금은 미약한 시작이지만 성령께서 나의 기도를 넓혀주시며 내 모든 삶에 하느님의 현존을 스며들게 하여 주실 것을 믿는다.
“주여, 내 손을 씻사오니, 마음과 영혼의 더러움도 씻어주시고, 이 손으로 마땅히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심미경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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