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뒤 빈 자리에 찾아온 뜻밖의 선물(요한 16,12-15)
1세기 원시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에 스승의 부재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요한이 처한 교회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때 요한복음사가는 예수님이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를 향해 그를 대신 할 ‘성령’을 이야기합니다. 독일의 탁월한 성서학자 루돌프 불트만(R. Bultmann)이 적시했듯이, “성령은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힘”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이 땅에 존재하지 않기에 그에게서 받은 것을 전하고, 아들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요한의 복음서 16,13절에서 진리를 완전히(온전히) 깨닫게 해준다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을 좀 더 깊이 이해하도록 해주는 성령의 역할을 뜻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예수님과의 관계는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신앙인은 형식적이고 편의적이며 작위적인 관계룰 피하고,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깨닫는 일에 등한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대가 암울할수록 신앙인의 삶은 성령의 인도에 맡겨야 합니다. 그는 우리를 진리로 이끄십니다. 어렵고 힘들 때, 그는 말씀을 생각나게 해서 진리 안에서 살도록 하십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줌으로써 신앙인이 자신의 신앙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이 지금 현존하듯이 그분의 말씀을 깊이 묵상, 관상하며 예수님과의 관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럼으로써 신앙인은 예수님의 생생한 말씀을 몸으로 살아낼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성령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성령은 신앙인에게 독단적으로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을 전달해줍니다. 때때로 그 말씀이 우리를 삶의 위기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죽음의 병이 아니라 생명의 병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신앙인은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 곧 복음서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불트만은, ‘공동체에 의해 선포되는 살아있는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교회는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찰하게 하시는 성령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말씀이 살아 움직여서 우리 자신이 또 하나의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민감한 신앙감각을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공동체(community)의 동근원적인 말인 코뮌(commune)이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그분의 말씀을 통째로 살아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진리를 선물로 준 성령 안에서, 성령과 더불어 ‘말씀을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살 길입니다.
김대식 토마스아퀴나스 사제(서대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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