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수난, 자발적 숙명
이삭과 이스마엘은 적자와 서자입니다. 일부다처제의 차등적 질서가 자녀에게도 대물림됩니다. 여기에 불행의 원인이 있습니다만, 이것도 다 제한적 환경 안에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옛 문화입니다. 그러나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제도이기에 사람의 마음까지 바로 세우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욕구는 불안과 두려움을 자극하고 여러 명분을 걸어 결국엔파국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소위 첩과 서자로 낙인 된 하갈과 이스마엘을 인간의 명분(혈통) 따위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분쟁의 위험에서 떼어내어 새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끄시고 축복하십니다. 당신을 향해 구원을 부르짖는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연약한것들,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것들, 인간사회가 보호하지 않는 것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시기에 하느님 앞에서 불의하고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죄인들에게조차도 용서와 화해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죄를 조장할 까닭은 없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한 하느님의 의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완전하지 않기에 우리는 스스로 의로움을 성취하거나 주장할 수 없습니다. 또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다.”는 바울로 사도의 말씀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크심을 말하는 것이지 은총을 죄에 종속시키는 말씀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하느님께서는 불완전한 인간사회 안에서 억압당하고 버려진 이들, 죄인으로 낙인찍히거나 죄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의 뜻에 순종하셨기에 수난을 기꺼이 맞아들이셨습니다.
그 하느님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따름으로 얻는 수난은 그리스도인의 자발적 숙명입니다. 우리 모두가 두려움 없이 사랑의 길을 걷기를 소망합니다.
✠안균호예레미야사제(동래교회)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느님 나라 비유는 신앙공동체의 이야기 (0) | 2020.07.27 |
---|---|
✠ 밀 이삭이 팼을 때 가라지 이삭도 드러난다 - 한성규발렌틴사제(거제교회) (0) | 2020.07.17 |
✠ 마음을 활짝 열고 (0) | 2020.07.10 |
✠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 (0) | 2020.07.03 |
선행의 실천 (0) | 2020.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