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은 반갑지 않은 만남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사마리아인의 혼합된 혈통, 종교, 문화의 문제로 서로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유대남자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 그 여인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여인의 질문(요한4:9)에 예수님은 자신이 ‘유대인 남자’라는 대답보다 ‘하느님의 선물과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요한4:10)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은 문화적, 역사적 등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유대에 속하신 분이 아닌 하느님께 속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우리를 대표합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정치, 조직, 이념, 개인의 인격 등 모든 것이 해당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속과 나의 프레임을 뛰어넘어 포용, 용서, 화해, 인애, 공평, 차별 등을 행하지만, 오히려 세속과 나의 프레임에 갇혀 하느님 나라를 거부하는 경우를 허다하게 봅니다.
15절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영혼의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 갈증은 남자를 향한 애정으로 표출되었고, 현재 6번째 남자와 동거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에는 수치와 죄의식이 있었습니다. 보통 그룹으로 아침, 저녁에 물을 길으러 오지만, 한참 뜨거운 정오 시간과 홀로 물을 길으러왔다는 것은 사람 만나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그녀의 실체를 아시고 아프게 끄집어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신비로움을 알게 되었고 그를 예언자라고 부르며, 자연스럽게 하느님께서 받으실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4:24)고 말씀하십니다. 원어를 직역하면, “성령과 진리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사실 예배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와 삶도 성령과 진리 안에서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예배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혼의 목마름을 가지고 성령과 진리 안에서 삶이 예배가 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곽무호 여호수아 신부(마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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