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속 부활 아닌 무덤 밖 부활
살아가며 만나는 일들은 대개 다면적입니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고, 고난과 환희가 혼재하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온통 벚꽃 잔치가 벌어졌지만, 이미 지는 꽃들 또한 허다합니다. 고난의 신비가 없는 부활의 신비는 너무 얕은 강 같습니다. 깊이는 겨우 한 뼘인데 폭이 100미터인 강 같습니다. 그런 강물에서는 물고기들이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부활을 맞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가 깊이 없는 단면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신앙생활이 한쪽 면에 경도되어 묶여있지는 않은지 이번 부활대축일을 맞이하며 깊이 성찰합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며 예수님은 이런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돌을 치워라”, “나오너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예수님은 라자로를 죽음에서 살려내시고, 무덤 밖으로 나오게 하시고, 꽁꽁 묶인 몸을 풀어주어 그로 하여금 다닐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친구 라자로를 살리신 일의 지향입니다.
살아났지만 여전히 꽁꽁 묶인 채였던 라자로와 달리 예수님의 무덤 속에는 풀어진 수의만 남아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은 더 이상 묶여 있지 않은 것이지요. 예수님의 몸인 교회 또한 풀어주어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지향입니다.
여전히 묶여 있는 무덤 속 부활이 아닌 묶여 있던 모든 것에서 자유한 무덤 밖 부활입니다. 무덤 속 부활을 성대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무덤 밖 부활을 힘차게 지키고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은 결국 전례 속 부활에서 일상 속 부활로 연결되어야 가능합니다.
성공회를 잘 아는 어느 변호사가 “대한성공회는 ‘결벽증’이 있어 보입니다.”고 한 말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 자신은 ‘그 말이 옳다.’하고 동의했습니다. 마치 빈 무덤을 깨끗이 정리하고 무덤 안에서 부활 예식을 하는 것처럼 제 안에 갇혀 있는 제 모습이 느껴져 그렇습니다.
다시 살아난 라자로를 풀어주어 다닐 수 있게 하라고 하신 예수님께서는 대한성공회, 특히 우리교구를 향해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더 이상 갇혀 있거나 묶여 있지 말고 다시 살아서 움직이라 말씀하십니다. 동트는 햇살이 비쳐오듯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인 대한성공회가, 부산교구가 묶여 있는 모든 것에서 풀어져 가야 할 곳을 향해 나아가는 생명의 행보를 힘차게 펼치길 기원합니다.
무덤 속 부활이 아닌 무덤 밖 부활을 온 교회가 맞이합시다.
교구장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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