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나는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이 세상의 인구가 70억이라고 친다면 70억개의 생각과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범위를 좁혀서 그리스도인들을 15억명이라고 가정하면 15억가지의 생각과 그에 따른 고백이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이 했던 예수에 대한 생각과 고백이 시간이 지나며, 삶 속에서 그의 경험 속에서 조금씩 변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성숙하게 고백하고, 때로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예수님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에 대한 생각과 고백은 그 끝을 헤아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정립되어, 누군가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떻게 고백하는지 관심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고백이 신학적으로, 성서적으로, 이성적으로 어떤지를 분석해보곤 합니다. 더 나아가 이 사람의 고백은 틀렸다. 이상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나의 고백은 나와 예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아주 주관적인 문제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름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또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위해서 맹목적으로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불행하게 한다면,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 그리고 성서 앞에,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 깊은 성찰을 해야만 합니다. 이런 정도의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고백은 우리를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에 예수님은 옳다 그르다를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알게 하신 분이 하느님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이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있는 일일까요?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성서의 인물들이, 성인들이, 믿음의 선배들이, 내 가족이 고백하는 예수는 나에게는 머릿속의 예수님입니다. 오늘 내 삶에 찾아오시고 함께 걷고 계신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향한 나의 고백은 나만의 고백이 아닌 우리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묻지 않으시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십니다. 이 예수님의 물음에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박준헌 미가 사제(교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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