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있는 새 교훈은 어디서 올까? - 마르 1:21-28
오늘 복음에는 사람들이 말씀의 권위에, 악령에서 해방되는 권위에 두 번씩 놀라고 있다. 선한 권위는 사람을 감화시키지만, 권위주의는 사람을 굴복시키려 하거나 한편은 굴종한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 가르치심을 듣고 놀랐다.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태 들어온 율법 학자들의 가르치심은 인본주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었고 말씀을 온전히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신본주의 관점에서 율법을 친히 온전히 이루고 계셨기에 말씀의 권위가 드러나고 있다. 이는 말씀이 생명력으로 작동되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생명의 빛이 되는 자녀의 삶을 누리고, 복음 전도자로 나아가려면, 하느님 말씀에 순종으로 성령님의 협조를 받아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내 안에서 살아서(골로 3:16) 먼저 태동 돼야 한다.
회당에서 권위 있는 말씀이 전해지자 가장 먼저 악령이 사람을 통하여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악령이 예수님이 누구인 줄 알고 있었으므로 성령의 임재에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예수님을 안다고 떠들고 있다. 우리도 예수님을 안다고 하지만 믿음에 행동이 없는 자들이 방향을 달리하여 떠벌리고 다니는 공허한 메아리를 많이 듣는다. 예수께서는 악령에게 말씀으로 나가라 명령하시고 꾸짖자, 발작과 소리를 지르며 떠나가고 그 사람은 악령의 시달림에 해방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고 수군거렸다.
이런 상황이 오면 우리는 어찌할꼬? 주님의 성령을 모신 성전인 우리는 잘 분별하여 경계해야 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사탄의 일을 멸하러 오신 승리자 구세주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1요한3:8) 생명의 말씀이 전해지는 곳에는 방해하는 세력이 기회를 보고 있으나 두려워할 것 없이 대적할 수 있다. (1베드5:9,야고2:19,4:7)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악령을 이기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고 우리는 그분을 구세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권위 있는 새 교훈 새 계명, 복음이다. 생명의 말씀이 인간을 온전케 회복시키신다. 우리의 믿음이 오직 사랑으로 표현된다면 (갈라5:6) 하느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말할 수 있고, (1고린4:20) “입 다물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악령아, 물러가라!” 외칠 수 있다.
- 이재탁 요한 신부(대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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