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된다는 것 – 마르 1:14-20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입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신앙을 선택할 수 있기에,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고민은 점차 사라져가고, 어떻게 하면 더 편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을지가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된 세상에서, 딱히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없어 보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매력적이지 않을테니 이런 흐름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지 교회에 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믿음의 굳은 심지를 세우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보이지 않는 헌신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안을 조장하는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신자유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가득찬 것 같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에 온기와 활력이 있는 이유는 이들의 존재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것들을 손에서 놓는 것입니다. 손에서 놓아야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 인간관계, 지금까지 쌓은 지식 등 끝까지 놓지 못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이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같습니다. 이것을 놓치면 큰일이 날 것 같은,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마치 절벽 끝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부여잡은 나뭇가지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손에서 놓은 이후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추락하지 않으려고 움켜쥔 나뭇가지를 놓아버린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넉넉한 바다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의 흐름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넓고 깊은, 잔잔한 바다입니다. 이 바다를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는 아직 절벽에 매달린 이들을 향해, 용기를 내서 움켜쥔 것을 놓으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곧 자유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움켜쥐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단지 그것을 놓으면 됩니다.
- 황윤하 라파엘 부제(동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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