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증거 하는 사랑 오늘 복음 속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면서 구약의 십계명과 그에서 파생된 조항들을 해체하십니다. 이처럼 십계명의 내용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심으로 우리에게 완성된 율법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율법과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완성된 율법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너희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계명 안에 사랑을 담으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분명 율법의 완성이며(로마 13:10 참조),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통해 몸소 율법의 완성을 보여..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복음서 본문은 루가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시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본문에서는 나병 환자 열 명에게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나병에서 나으면 사제에게 확인을 받아야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치유하신 후가 아니라 치유하시기 전에 믿음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나병 환자들은 어떤 믿음이 있어서 치유가 되었을까요? 그들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루가복음에서 이 용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에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열 명 중 아홉 명은 유대인이고 한 명은 사마리아인이었는데, 사마리아인만이 예..
무한대의 용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라고 묻는 베드로의 질문에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는 답변을 주십니다. 이 답변은 무한히 용서해 주고 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을 초월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용서를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통곡하는 지상명령입니다. 복수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면에서는 속 시원하고 후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복수는 대물림이 되어 한쪽에서는 원수를 갚기 위해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말린 쓸개를 옆에 두고, 앉으나 서나 와신상담(臥薪嘗膽)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히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