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성찰과 참 자유 – 루가 6:39-49 오늘 복음서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왜곡하며 백성을 억압하는 이들을 비유로 경고하십니다. 그 경고의 대상은, 하느님의 은총이어야 할 율법을 사람들을 옭아매는 수단으로 삼는 율법주의자들입니다. 또한,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도구로 삼아 타인의 삶을 억압하며, 수많은 영혼을 자유가 아닌 고통과 눈물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자신이 율법 실천의 표준인 양 당당하게 살아가며, 하느님의 이름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의 눈과 귀와 마음이 닫혀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과연 이런 이들에게서 어떤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
사냥꾼의 자유에 맞서기 – 루가 6:17-26 말과 사슴이 싸움을 벌였다. 말은 사냥꾼을 찾아가 사슴에게 복수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사냥꾼은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정말로 복수하고 싶거든 내가 고삐로 널 조종할 수 있도록 입에 마구를 채우고, 사슴을 쫓는 동안 내가 편히 앉도록 등 위에 안장을 얹어야 해.” 말은 기꺼이 동의했다. 결국 말은 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사슴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말은 사냥꾼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와요. 입과 등에 채운 것도 풀어주세요.” 하지만 사냥꾼의 대답은 이랬다. “이봐,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이제 막 마구를 채웠잖아. 난 지금 이대로가 좋단 말이야.” - 이솝 우화에 나오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사냥꾼은 말에게 적당한 조건을 내겁니다. “..
제자가 된다는 것 – 마르 1:14-20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입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신앙을 선택할 수 있기에,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고민은 점차 사라져가고, 어떻게 하면 더 편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을지가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된 세상에서, 딱히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없어 보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매력적이지 않을테니 이런 흐름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지 교회에 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믿음의 굳은 심지를 세우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보이지 않는 헌신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안을 조장하는 세상에서..
통제 & 자유 율법주의자인 회당장이 보여준 태도에서 나타나는 것은 안식일날 일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현재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도 안식일 날은 고쳐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율법을 신봉하는 유다인들이 지키는 여러 율법과 개량된 종교적 법이 있다. 대표적으로 613조와 미쉬나, 미드라쉬등이 있고 그 외에도 생활관습법들이 많다. 율법주의자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고통당하고 외세의 침략으로 지배받으며 수난을 겪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율법을 더 잘 지키지 못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더 많은 율법의 개량을 통해 방대해진 규칙과 조직적인 규제들을 만들어가게 되고 수년간 병을 앓아온 여인을 안식일날 고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의 규제와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