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본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본다.’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외부에서 빛이 굴절되고 시신경에 전달되고 뇌로 전달, 정보가 처리되어 시각정보를 받아들여 대응하는 모든 상태를 말하는 것이 ‘본다.’라는 말의 첫 뜻입니다. 그 뿐일까요?
우리는 ‘책을 본다.’라고 말하면 그 책에서 정보와 지식 그리고 누군가의 경험을 배우기도 합니다. 또 ‘시험을 본다.’는 말은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을 응용하여 답을 내는 과정으로 이 기회를 통해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숙 합니다. ‘다음에 우리 한 번 보자.’는 약속을 하고 그 사람과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근황을 이야기하며 교류하기도 합니다.‘내가 보기에는’이라고 말하며 나의 관점 즉 내 주장과 생각은 어떤지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본다.’고 말하면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신뢰하는 모든 행동을 표현하며 반대로 ‘하느님이 우리를 보신다.’는 말에는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하느님의 자녀들을 그리고 이 세상을 지키시고 돌보신는다는 믿음을 표현합니다.
‘본다.’는 이 외에도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바르티매오’가 등장합니다. 예리고에서 지내던 시각장애인인 그는 예수와 그 제자들이 그 동네를 지나실 때 ‘다윗의 자손이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하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만류와 꾸지람에도 계속해서 소리칩니다. 이 부르짖음에 예수께서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자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앞을 보지 못한 바르티매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앞을 보고싶습니다.’ 라는 소망을 가지고 간절하게 외쳤고, 예수께서 그 외침을 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민 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육신의 눈은 뜨고 있지만, 혹시 내게 또 다른 눈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내 이웃의 아픔이 보이지 않고, 하느님의 함께하심이 보이지 않고, 내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께 겸손히 외쳐야 합니다.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오늘 우리는 이렇게 말할 힘과 용기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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