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비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
성지, 고난 주일의 복음은 그리스도 공생애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하시고,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신 후, 유다가 앞장선 무리들에게 잡혀가시고, 심문받고 빌라도에게 넘겨져, 유다지도자들의 음모에 따라 십자가형을 언도받고 채찍에 맞으신 후, 골고다 언덕길로 향하여 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숨을 거두십니다.
삼일 간 이루어지는 일정이 기독교 이천년 동안 진리이자 교리로 전해지고 기념합니다. 본문 서두에 3년간의 공생애를 마무리하면서 함께 동고동락한 제자들과 성찬을 나누고자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별러왔는지 모른다.”하신 것처럼 간절하게 기다리셨던 시간이고 만찬이며 의식이었습니다.
14절에 제자라는 호칭이 사도로 바뀌어진 것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찬이 특별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시며 닥쳐올 고난의 잔을 거두어주시기를 기도하시며 아버지의 뜻에 맡겨드리기로 합니다. 모든 수난을 겪으시고 십자가형에 처해져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찬제정하실 때 이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머릿속으로 그려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은 성찬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30년간 일반인처럼 어머니와 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사시고 3년간의 공생애, 길지 않은 시간을 하느님 나라 선포와 제자를 양육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신 그리스도의 생애는 듣고 묵상하고 해도 언제나 신묘막측 합니다.
필립비 2장에서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지만 동등한 존재가 되지 않고 자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고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다’고 합니다.
하느님과 같은 분이 하늘의 영화를 다 포기하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셨다는 것은 겉모습만 종으로 보이게 가장한 것이 아니라 종의 본질적 속성을 취하셔서 종 그 자체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는 것은 이 땅에 아기로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셔야 했고 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입니다.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뱉는 침을 얼굴에 맞고, 두 눈을 가린 채 뺨을 맞고, 주먹으로 린치를 당하고, 머리를 맞았습니다. 옷을 다 벗긴 몸을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치고 등에 꽂힌 채찍을 잡아챌 때 살덩이가 찢겨나고 39대를 맞아(사형수에게 40에서 하나를 뺀 39대를 때림) 뼈가 드러나고 피를 철철 흘림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태가 되셨겠지요.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권세와 능력을 전혀 주장하지 않으시고 신성을 포기하고 하찮은 종의 모습이 되시기로 뜻하신 것을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그 마음을 간직하기를 우리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겸손한 마음이 담긴 성찬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찢기고 흘리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하나의 몸으로 먹는 이들이 한 몸,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룹니다. 따라서 교회는 힘 센 자, 권력 있는 자, 가진 것이 많은 것은 십자가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형제요 자매이며 저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서로 섬기며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빛과 소금의 공동체입니다.
유명희 테레사 사제(거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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