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말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붙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드리는 장면은 이를 데 없이 숭고합니다. 관상기도의 한 방법인, 상상을 통해 그 현장으로 들어가서 바라보면, 시간도 숨도 멈춘 듯한,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그 어떤 것도 끼어들 수 없는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면서 가리옷 사람 유다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유다는 세속의 가치와 상식, 명분의 틀을 가지고 예수님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가치관과 삶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이해하려니, 결국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님을 대상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내 삶에서 예수님이 중심에서 밀려나고, 자의식 가득한 신념과 의지가 중심을 차지하면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우상이 자리잡게 됩니다.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에게는 가리옷 유다에게 있었던 강고한 신념과 가치관, 곧 자의식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근원에 대한 갈망을 고이 품고서 숨죽이며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삼남매의 삶의 중심에는 예수께서 들어오실 자리가 올곧게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언니 마르타의 그리스도 고백(요한11:27)을 알고 있었고, 오빠 라자로가 다시 살아나는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과 하시는 일을 통해 하느님께서 하실 일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유다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감했고, 그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숭고한 죽음의 예식을 치러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에 사람의 사사로운 생각이 끼어들지 않도록 경고하셨습니다.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말라!!”
세속과 하느님의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서 사사로운 이익과 필요에 따라 세속과 하느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정말로 내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되는 2022년 봄, 사순절입니다.
천제욱 요셉 사제(영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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