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 도당’에서 ‘거룩한 하나의 교회’가 되기까지 - 마태 18:15-20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엄연히 다른 종교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예수 부활 직후 그리스도 공동체에게는 한 가지 숙제가 있었습니다. “나자렛 도당”이라는 항상 자신들에게 따라붙는 꼬리표 때문이었지요.
초기 예수 공동체들이 독자적인 종교로 인식되지 못했다는 말임과 동시에 갈릴래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유대교의 소수 종파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예수님처럼 메시아라 불렸던 재야인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주류 역사학자들의 시선으로 본 나자렛 예수는 그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의 추종자들에게도 사이비에 불과했을 겁니다. 이런 취급을 받았던 초대 교회가 어떻게 제국의 유일한 종교가 되었는지 매우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은 우리의 이 궁금증을 풀어줄 단초를 제공합니다. 바로 “교회”를 통해서 말이지요.
마태오복음이 집필된 주된 목적 중 하나는 예수가 유대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은 참 메시아임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나자렛 도당의 수괴 예수는 족보 없는 뜨내기 선동가가 아니라, 아주 명징하게 토라에서 예언한 “다윗의 자손”이라는 정당성 그 자체라는 말이지요. 신약의 여타 서신보다 늦게 씌여진 복음서가 신약성서 맨 앞에 구성되어 있는 이유 그리고 그 중에서 마태오복음이 가장 먼저 위치한 이유도 구약성서의 구성과 대응시키기 위함입니다. “복음서는 토라(모세오경)” “예수는 율법의 완성”이라는 구도 말입니다.
마태오복음은 이렇게 마침내 종교적 정통성을 확보한 예수님에 대해 본격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5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구성합니다. 오늘 본문 18장은 바로 그 네번째 주제 “교회”에 관한 한 단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후에 생성된 “교회”가 이미 예수님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는 점은 마치 세종대왕께서 MZ세대의 줄임말 문화를 알고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소개하셨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가 하나 발견됩니다. 바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교회”는 이미 이 세상을 넘어서신 선생님의 입을 빌려서라도 강조해야 할 핵심가치였다는 점이지요.
마태오복음은 교회를 두고 단지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만 규정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수천 년을 지켜온 토라의 전통 위에 있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공동체가 함께 전승하면서 완성된 것이라 말합니다.
“나자렛 도당”에서 “교회”에 이르기까지, “고백”에서 “공동체”로 완성됨으로서 비로소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아류종파의 시선을 벗어버리고 “성체성사의 신비”라는 독특한 신앙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거룩한 교회에서 2000년 동안 전승된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목격합니다.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이신효 스테파노 부제(부산주교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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