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마르코5:21-43).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며 힘겨운 삶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힘겨운 시선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향하지만 그 고통은 여전합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은 늘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첫 사례 여인에게는, "여인아, 네 믿음이(피스티스πίστις, faith)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르코5:34). 두 번째 사례에서도 주님은 축복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피스튜에πίστευε, believe) 하여라(마르코5:36)".
주님은 얼마 전, 거센 바람과 어둠 풍랑 속에서 극심한 두려움과 죽음의 고통 속에 있는 제자들에게도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피스틴πίστιν, faith) 없느냐?(마르코4:40)” 하시며, 죽음과 같은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구해 주셨습니다.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늘 πίστη believe 언급하시며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구원을 이루기 위한 믿음πίστη believe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같이 피스테πίστη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한국 교회는 그동안 피스테, believe를 오직 믿음으로만 강요하여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 언어가 왜곡되었습니다. 믿음은 이성에 상대 개념이 아닙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강조된 오직믿음 고백이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신앙의 언어로 변질되었습니다.
성공회 신학자 마커스 보그의 지적처럼, believe, beloef, belove는 같은 어근에서 하나의 신앙 언어로 주님을 고백하는 풍성한 신앙의 언어로 고백되었던 ‘믿음’이었습니다만, 기적 치유만이 믿음인양 강조되면서 교회 문화가 타락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하느님에 대한 포기 없는 신뢰beloef와 끝없는 사랑belove이 우리를 구원하다는 믿음이 우리 공동체에 다시금 올곧게 세워지길 갈망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하는 여인과 야이로 가정은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구원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그들을 구원으로 이르게 하였습니다. 주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무엇인지..일상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함께 성찰하고 기도하기를 갈망합니다.
- 원성희 아모스 사제(서귀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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