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기준 - 마르 6:1-13
내 키는 얼마나 될까? 나의 재능은 얼만큼일까? 우리는 무엇인가를 가름할 때 그것이 어느정도인지 잦대를 가지고 판단하고 표현한다. 길이, 넓이, 크기 등도 그렇지만 잘하느냐, 잘생겼냐, 부자냐와 같은 것도 어느정도의 기준이 정해질 때 그것을 가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나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정해지게 된다.
판단기준이 정해지면 그것을 토대로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을때는 오히려 그 값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예수님이 고향에서 병자 몇사람에게 손을 엊어 고쳐주셨을 뿐 다른 기적들을 행하실 수 없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를 보고 이미 경험한 고향 사람들의 판단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내가 경험한 것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가 들어나는 것이다.
하느님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혹시 내가 알고 있고 경험한 정도의 능력만 있는 분일까?
전지전능(全知全能),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하느님이라고 말하지만 이 표현 역시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의 표현일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지팡이, 신발, 속옷 한 벌 이외의 것은 지니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왜일까? 이는 내가 가지고 있는 만큼의 믿음 즉 가지고 있는 것에 집착하고 의지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를 지켜줄 어떤 것이 없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찾게되고 하느님을 의지하게 된다. 이는 전지전능, 무소불위의 하느님이 우리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판단기준을 내려놓자. 아니 그 판단기준을 다시 설정하는 것이 좋겠다. 내가 아닌 주님으로 내가 아닌 하느님으로 그 기준을 바꿀 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생길 것이다.
- 이성호 요한 사제(부산주교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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