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따라나섰다 – 마르10:46-52
앞을 보지 못하는 걸인 바르티매오가 예수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간청하자 예수께서는 그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앞 못 보는 이가 예수님을 통해 앞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메시지는 아닙니다.
자비를 구하며 눈을 뜨게 해달라는 바르티매오의 요청에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구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네 눈을 뜨게 했다거나, 네 눈을 고쳤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살렸다(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눈을 뜨게 되었으니 빌어먹지 않게 되어 굶어 죽을 걱정이 없어졌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바르티매오 사이에 일어난 일은 단순히 바르티매오의 장애를 고친 일이 전부가 아닙니다.
핵심은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원자로 맞아들였고, 예수님은 그런 바르티매오에게 그가 구원되었음을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그 구원됨의 결정적 표현이 눈을 뜬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라’하셨지만, 그는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바르티매오의 구원은 단순히 눈을 뜬 일이 아닙니다. 그의 구원은 생명의 길이 예수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눈을 뜬다’는 말은 이중적 의미를 지닙니다. 말 그대로 눈을 뜬다는 의미와 이제껏 알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바르티매오의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확증으로 그는 육체의 눈만이 아니라 마음의 눈, 영적인 눈도 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된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따라나섰다는 것은 그가 받은 구원이 육체의 장애를 고침 받은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길,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 하느님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따르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삶의 어려운 지경에서 하느님의 도우심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도우심이 곧 구원은 아닙니다. 구원은 삶에 대한 우리의 가치가 하느님의 길에 있음을 알고 그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예수의 길을 따라나서는 구원의 삶이 우리의 삶이기를 기원합니다.
-안균호예레미야(기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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