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를 봐요! - 루가 13:10-17
오늘 우리가 지켜보는 회당 안에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한 쪽에서는 18년 동안 병마에 사로잡힌 여인을 고쳐주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안식일에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였다며 분개하고 있다. 안식일의 회당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사건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시다. 이 사건을 목격한 우리는 진정 어느 쪽을 지지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예수님은 일주일 중에 엿새가 있는데도 굳이 왜 안식일에 병을 고치셔서 이런 갈등을 일으키셨던 것일까? 18년 동안 장애를 안고 살아야했던 그 여인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선과 회당장의 시선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달랐던 것일까? 이 물음 속에서 나는 그림책 ‘위를 봐요!’ (정진호 지음, 현암주니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림책 ‘위를 봐요!’에서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수지가 자신의 방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외출이 힘들었던 수지는 매일 아래를 내려다보지만 늘 개미 같이 보이는 사람들의 검정 머리만 보게 된다. 그때 수지는 속으로 외친다. ‘내가 여기에 있어요. 아무라도 좋으니... 위를 봐요!’ 바로 그 때 수지의 간절한 외침이 들렸던 것일까? 어떤 남자 아이가 수지를 올려다보게 되고 수지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수지가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길 위에 눕는다. 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지의 이야기를 듣고 수지가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한 사람씩 모두 길 위에 눕는다. 앞만 보고 걸어갔던 그들의 시선에서 수지의 시선으로 수지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바로 그 때 그림책을 읽던 독자들도 수지의 머리가 아니라 고개 들어 독자들을 향해 활짝 웃는 수지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된다. 갇혀서 내려다보기만 했던 수지의 시선이 하늘을 향하게 된 것이다.
안식일이 진정 어떤 날인가? 하느님 안에서 온전히 안식하며 생명을 회복시키고 온전히 되살리는 날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보아도 보지 않았던 그 여인을 예수님은 보셨고 소리 없는 그녀의 간절한 외침을 들으셨다. 그리고 그녀를 살리는 일에 단 하루도 지체하지 않으셨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온 몸으로 보여주셨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디를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을까? 고개 들어 수지를 바라보았던 그 아이처럼 잠시 멈추어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바라보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그리고 그곳을 향해 활짝 두 팔을 벌려보자. 그렇게 그들과 함께 참된 안식일을 누려보자.
심미경 아가타 사제 (포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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