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을 안고 십자가로" - 마태 17:1-9
오늘 우리는 주의 변모 주일로 지킵니다. 성서의 변모 사건이 예수님의 수난 이전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축일인 8월 6일보다 사순절 직전인 지금이 적절한 때이지 싶습니다. 변모 사건은 공생애의 절정을 앞두고, “예수는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다시 한번 분명한 답을 주는 사건입니다. 탄생과 공현, 봉헌과 세례, 그리고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복음서가 일관되게 증언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변모 사건 역시 이 정체성을 더 깊이 드러내는 계시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나타난 영광은 헬라어 δόξα(독사)입니다. δόξα는 사람들의 평가와 명성, 인정을 뜻하는 말이기에, 우리는 영광을 성과와 성공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이 말하는 영광, kāvôd는 무겁다, 중대하다는 뜻입니다. 성서적 영광은 빛나는 외형 이전에, “하느님이 정말로 여기 계신다”는 압도적인 실재의 무게입니다. 그래서 변모의 영광은 예수님이 달라진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나자렛 사람 예수에게서 하느님의 실재를 마주하게 된 사건입니다.
하느님은 눈으로 붙잡을 수 없는 분이시기에 구름 속에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그의 말을 들어라.” 변모 사건에서 또 중요한 것은 빛이 아니라 이 음성입니다. 영광에 대한 올바른 응답은 감탄이 아니라 경청, 초막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했지만, 하느님은 영광을 감추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변모 사건의 결론은 산 위의 황홀함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수난 예고 직후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다가올 십자가 앞에서 하느님은 미리 예수님의 참된 정체를 밝혀주십니다. 변모의 빛은 고난을 피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그 고난 안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음을 알게 하는 빛입니다.
사순절을 앞둔 지금, 교회가 우리에게 남기는 말은 “빛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그의 말을 들어라.”입니다. 사순절은 더 보려고 애쓰는 시간이 아니라, 말과 소음을 멈추고 듣기 위해 침묵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두려울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일어나라.” 다가올 사순절은 빛을 품은 사람으로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시간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균호 예레미야 사제(기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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