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아무나 하나? 하느님 사랑을 아무나 하나? - 마태 18:21-35 진정한 용서의 대 전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한 자는 “용서”라는 말이 통하게 된다. 그리스도 영이 거하는 자가 성령의 힘을 받아 시작 할 수 있다. 용서는 잘못한 사람을 자신에 대한 부담감이자 의무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의식적인 행위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예수님의 명령이기도 하다. (마태18:35) 용서의 개념은 빛을 탕감하여 주는 것인데 누구라도 용서에 관해 말하는 것은 쉽지만 행하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할 용서의 원리에 관한 가르침이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 대해 어떤 방법으로도 갚을 수 없는 중한 빚진 사람들이다. 성서에 “의인이 없나니 하..
마지막 때, 믿음과 사랑으로 주님의 복음을 증언할 때 오늘 복음은 성전 파괴와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고 계신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말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종교의 지도자들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이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로 완전히 파괴될 미래를 보셨다. 그리하여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오늘 우리도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이 시대를 분별해야 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체나 교회도 하느님 앞에 제대로 서있는지 분별해야 한다. 실상 이려니 하였으나 허상이로다! 모든 곳에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자들이 미련하게 깨닫는 안타까움이 만연한 세태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화 중에 종말의 때에 징조에 대해 알기를 원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병든 무리들의 소생 (마르6:30-34,53-56) 요즘 세대는 다양한 이들이 자기목적 성취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여러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활동을 하지만 유리감옥 생활 같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자신도 모르게 내외면의 불일치 속에서 헤매고 있다고 인식하지만,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목자 없는 양 같은 많은 이들이 측은이 여겨 주시는 목자를 막연히 기대하고 있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도심에서는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정신적인 장애를 갖고 기괴한 돌출 행동하는 여러 중독자들이다. 사이비 기독교 환자들 신천지가 새롭게 날뛰고, 중증 정신병원 환자들이 약기운에 시내를 돌아다니는 느낌이라 할까? 또 코로나19로 지구촌 많은 이들이 우울증 환자! 지금..
병자에게 필요한 복음 다양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은 영, 혼, 육의 건강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안다. 육신의 고통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길이 있다. 재정 형편에 따라 시대, 지식과 고통의 강도에 따라 처방의 선택의 길이 다르다. 기도(금식), 음식(자연요법), 운동, 약국(약), 병원(수술), 교회(원로), 필자도 모든 것을 해봤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관리를 못해 지금은 풍치에 시달리지만 치아를 끝까지 사용하다 뽑는다. 스스로 뽑은 치아(8개)를 누구보다 많이 갖고 있다. 병원에서는 주지 않는다. 집에서 스스로 뽑아 갖고 있다. 치통에는 일가견이 있다. 고통을 어느 정도 즐길 줄 아는데, 이젠 여러 육체적 고통은 싫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잘 해결하며 살아간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