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메시아의 탄생을 통해 만들어진 요셉, 마리아, 예수님의 가정을 소개해 줍니다. 교회 전통은 이러한 예수님의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부르며, 다른 모든 가정들의 모범으로 소개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성가정이라는 개념 안에 자신의 가정이 이루지 못한 기대와 환상을 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성가정은 환상적인 가정이었을까요?
사실 나자렛 성가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며,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가정입니다. 우리 가정에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불행의 여건을 많이 갖춘 가정이었습니다. 이 가정은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막일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도 막일꾼들의 삶은 고단합니다. 이 가정은 혼인하기 전부터 부부간에 오해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부모와 자식 간에도 오해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불행의 여건을 두루 갖춘 가정을 본받아야 할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교회가 성가정을 본받자고 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로 가정의 중심에 하느님께서 자리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나자렛의 성가정은 분명 인간적인 불행의 여건을 많이 지녔으면서도 그 중심에는 하느님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가정은 중요한 선택과 결단의 순간에 급하게 나아가기 보다는 멈추어섰으며, 맞닥친 상황 앞에서 가정 한가운데에 계시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물어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네 가정 속 중심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요? 혹시 가족 서로를, 더 나아가 자기 스스로마저도 들여다보지 못하게 만드는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은 아닌지요? 우리 각자에게 또 우리의 가정 안 그 중심에 두어야 할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며, 그분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함을 우리 모두 잊지 않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사공병도 베드로 사제(울산교회)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례 은총을 기억하라! - 유용숙 프란시스 수녀사제(구미교회) (0) | 2022.01.11 |
---|---|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 - 박준헌 미가 부제(교무국) (0) | 2022.01.04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 김대성 여호수아 사제(화명모두애교회) (0) | 2021.12.17 |
회개의 증거 - 조연성 야곱 사제 (0) | 2021.12.10 |
Echo chamber (0) | 2021.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