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백하는 메시야: 회복을 시작하는 메시야 - 마태 11:2-11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이 질문은 절망 속에서 터져 나오는 신앙의 질문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기대한 메시야는 불의를 단번에 심판하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방식으로 세상을 뒤집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단순합니다.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를 저는 이들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가 들으며, 가난한 이가 복음을 듣는다.” 예수님은 “내가 메시야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회복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보여 주십니다. 메시야는 권력 교체가 아니라, 상처받은 인간이 다시 일어서는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군대를 일으키지 않으셨지만, 버려진 자를 공동체로 돌려보내고 죽은 듯한 삶을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우리도 요한처럼 묻습니다. “예수님, 정말 그분이 맞습니까? 세상은 왜 여전히 불의합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지금도 같습니다. “회복의 일을 보아라.” 무너진 사람이 다시 서는 곳, 가난한 이가 존엄을 되찾는 곳, 소외된 이가 공동체 안으로 돌아오는 곳, 거기에서 예수님은 이미 일하고 계십니다.
성공회는 성사와 공동체를 통해 이 회복의 영성을 이어 왔습니다. 교회는 권력을 말하는 곳이 아니라, 회복을 말하는 곳입니다. 아픈 이의 자리를 세우고, 낙심한 이에게 길을 열어 주며, 존엄을 잃은 이들을 다시 인간답게 하는 일, 그곳에서 우리는 메시야의 길을 따릅니다. 요한은 “메시야가 누구인가?”를 물었지만, 예수님은 “메시야가 무엇을 하는가?”로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의 메시야은 높은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회복을 시작하는 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담대히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다려 온 분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지금도 회복을 시작하시고, 우리는 그 회복의 일에 초대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원성희 아모스 사제(서귀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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