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봄의 영성" - 요한 1:29-42
오늘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를 바라본 시선과 예수께서 베드로를 바라본 시선에 사용한 헬라어 동사는 “엠블레포 ἐμβλέπω”입니다. 이는 단순히 “보다”는 의미의 ὁράω(호라), βλέπω(블레포), θεωρέω(테오레오)와는 다르게 성서에서 사용됩니다. 엠블레포는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관찰에 가까운 바라봄입니다. 잠시 멈추고, 숙고하고, 분별하는 관조적 시선입니다. 신약성서에서 이 단어는 12번 사용이 됐는데,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도록 청자의 시선을 환기하도록 시킬 때나,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눈길, 죄를 깨닫게 하는 강렬한 시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던 제자들의 시선 등에 사용됐습니다. 바라봄이 곧 믿음과 순종과 본질을 응시하는 것과 직결됨을 암시한 중요한 단어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첫 번째로 예수를 보라고 했을 때는 단순히 ὁράω(호라)동사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라고 할 때는 “엠블레포”를 씁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베드로를 지긋한 시선으로 응시할 때도 엠블레포가 사용됩니다. 이를 통해 세례자 요한은 두 제자의 시선을 예수께 향하도록 하여 그들이 예수를 따르게 했고, 또 베드로를 바라보는 예수의 진지한 시선을 통해 예수께서는 베드로 내면에 있는 그의 소명과 그의 본질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도 이때 자신을 봤던 주님의 강렬한 시선에 이끌려 그를 따르게 됐을 겁니다.
본다는 것은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듣고 말하는 데 우리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반해 보는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보는 것이 곧 자기가 믿는 바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관조의 영성”은 제대로 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집중과 애정을 갖고 대상을 응시하면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대상에 대한 본질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창조주의 시선에 다다르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지긋한 시선이 예수의 신원을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제자들의 헌신을 끌어냈듯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상을 좀 더 따뜻하고 적극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길 바랍니다. 진지하고 따뜻한 시선은 곧 존재에 대한 깊은 관심의 표현입니다. 2026년, 우리도 주님의 그러한 시선을 배워 새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길 기원합니다.
채창완 야고보 사제(진주산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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