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우물가에서
사순절은 우리 존재의 갈증을 직면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더 안정된 삶을 원하고, 더 인정받기를 원하며, 더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채워졌다 싶으면 다시 허전해집니다. 오늘 복음 속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요한 4:13)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붙잡지만 여전히 목이 마릅니다.
여인은 다섯 번의 관계를 지나왔습니다. 그 사정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반복된 관계가 그녀의 갈증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정오에 우물로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14절) 라고 약속하신 직후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16절) 하십니다. 그분은 왜 상처를 건드리실까요? 왜 가장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드러내게 하시는 걸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초대를 통해 여인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갈증의 뿌리를 드러내려 하십니다. 우리는 갈증을 해결하려 애쓰지만, 갈증을 만드는 근원은 보지 않으려 합니다. 외로움을 일로 덮고, 불안을 소비로 덮고, 상처를 다른 관계로 덮습니다. 때로는 신앙의 열심으로도 덮습니다. 그러나 덮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갈증은 채우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숨기기 때문에 깊어집니다.
예수님의 초대에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17절) 말합니다. 이 솔직한 고백 앞에 예수님께서는 그녀와의 대화를 그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녀를 판단하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깊은 말씀으로 이끄시고, 마침내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26절)라며 당신 자신을 고백하십니다. 여인은 숨김이 드러난 자리에서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갈증의 방향을 바꿉니다. 이제 더 이상 인정받기 위해, 숨기기 위해 물을 길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진실 앞에서도 떠나지 않는 분, 자신의 있는 그대로 만으로도 충분한 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돌아갑니다. 물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더 깊은 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갈증을 덮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는 예수님께 생명을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이 부분은 건드리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순절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정직하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정오의 우물가에 서 있습니다. 그분의 질문과 초대에 단 한 문장이라도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우리 안에서도 영원히 마르지 않는 물이 흐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공병도 베드로 사제 (부산주교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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