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고자 꾀를 내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볼 때, 로마의 식민지인 조국 사람들 앞에서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조국과 조국민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 되고, 반대로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한다면 국가에 반역을 하는 것이 될테니.... 이 질문은 정말이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며, 바리사이들 입장에서는 아주 환상적인 질문이 맞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는 멋들어진 대답으로 바리사이들이 치밀하게 준비되었던 함정을 너무도 쉽게 피해버리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바리사이들이 공들여 준비한 이 함정은 왜 실패했던 것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날카로운 이유는 바로 바리사이와 예수님의 입장 차이에 있습니다. 사실 바리사이들이 심히 곤란하리라고 준비했던 그 질문은 하느님만을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로마에 맞서 단 한마디도 못하는 바리사이, 자기 자신들에게 곤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에 눈치 볼 필요 없이 하느님 나라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예수님께는 특별한 고민 없이도 대답할 수 있는 너무도 쉬운 문제였던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일상에서 오늘 복음 속 예수님처럼 많은 순간 질문을 받고, 거기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그중에는 참으로 무언가 하나를 선택하기 곤란한 것들도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이렇게 자신에게 되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질문이 사회인 누구누구에게 곤란한 질문인가? 신앙인 누구누구에게 곤란한 질문인가? 하고 말이지요. 사실 하느님의 뜻이 우리에게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그 뜻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무거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 뜻과 내 뜻을 함께 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따르는 우리라면 사회인 아무개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영원을 살아갈 신앙인 아무개로 지금을 선택해야하지 않겠습니까?
✠ 사공병도베드로사제(울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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