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깨어 기도하며 그 날을 구원의 날로 맞이할 수 있기를 - 루가21:25-36(심미경 아가타사제(포항교회))
2024.11.29
늘 깨어 기도하며 그 날을 구원의 날로 맞이할 수 있기를 – 루가 21:25-36 오늘 예수께서 ‘그 때’와 ‘그 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깊은 호흡으로 그 말씀에 머물러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 때’와 ‘그 날’이 지금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나요? 나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 때’와 ‘그 날’을 일상에서도 의식하며 받아들이고 있나요? 나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그 때’와 ‘그 날’을 떠올려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빼앗길 때, 그 날이 덫과 같이 갑자기 들이닥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나요? 나는 지금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고요히 알아차려봅니다. 예수께서는 ‘그 때’와 ‘그 날’에 우리가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빌라도가 예수께 질문했던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하는 질문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후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한 말에서 빌라도는 예수를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어쩌면 유다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나를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가 나의 왕인가?”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왕국은 욕심과 이기심이 난무하는 세상의 왕국이 아니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약자와 강자가 함께 뛰노는, 노예가 해방되고 억울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하느님의 나라를 말씀하신 것이며 그런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하느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하느님의 나라..
평화의 마을에 평화는 없고… - 마르13:1-8 남쪽으로 흐르는 요르단강이 사해와 만나는 지점에서 지중해로 가는 이스라엘 중심부 산악에 위치한 도성 예루살렘은 오랜 기간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이었다.가나안 여부스족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땅을 여호수아가 점령하고 다윗 이후 예루살렘에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지지만, 바빌론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바빌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느헤미아와 백성들은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성전을 재건하지만 ‘평화의 마을’ 에 세워진 성전은 여전히 이방인이 들어오면 사형에 처한다고 경고하고 여인을 대놓고 차별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힘과 폭력, 차별이 당연시되는 성전’이 세워진다. 예수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의 성전이라 불렸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엔 700명의 사제들..
비천한 이를 높이시는 하느님-마르12:38-44 오늘 본문은 성전에서 헌금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많은 헌금을 넣는 가운데, 한 가난한 과부가 자신이 가진 생활비 전부인 두 렙톤을 헌금궤에 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헌금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궤에 넣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단순한 격려나 칭찬 이상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부자들이 풍족한 가운데 여유 있게 헌금할 때, 과부는 가진 것의 전부를 헌금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헌금의 양으로만 따지면 가장 적었지만, 예수님께는 오히려 그 작은 헌금이 가장 크고 귀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에서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지 ..
혹, 당신도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니신지요?(마르 12:28-34, 이재탁 요한 사제(대구교회))
2024.11.02
혹, 당신도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니신지요?(마르12:28-34) 사랑의 계명에 공감력이 대단하고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 학자를 보시고 예수님은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서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사랑의 삶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늘나라의 삶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의 사랑을 믿고 실천하여 경험적으로 아는 삶이다. 지식으로 단지 마음의 동조로 끝나는 믿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는 낙오자 삶에 불과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신다.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
눈을 뜨고 따라나섰다 – 마르10:46-52 앞을 보지 못하는 걸인 바르티매오가 예수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간청하자 예수께서는 그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앞 못 보는 이가 예수님을 통해 앞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메시지는 아닙니다. 자비를 구하며 눈을 뜨게 해달라는 바르티매오의 요청에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구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네 눈을 뜨게 했다거나, 네 눈을 고쳤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살렸다(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눈을 뜨게 되었으니 빌어먹지 않게 되어 굶어 죽을 걱정이 없어졌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바르티매오 사이에 일어난 일은 단순히 바르티매오의 장애를 고친 일이 전부가 아닙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