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섬기는 사람 - 마르 9:30-3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물으십니다.사실 이러한 논쟁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지내던 내내 각자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유혹이며 욕망에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감추며 은근히 경쟁하고, 겉으로는 진정한 형제애를 사는 척한 결과입니다.첫 자리, 높은 자리와 영향력, 주도권을 쥐는 자리인 “가장 큰 사람”에 집착하고 있을 때, 주님은 다가올 십자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고난받는 종’으로서 자기 생명을 내어줄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제자들은 스스로 스승이 되거나 높은 사람이 될 것만을 생각합니다. 선생은 섬김을 말하고, 제자들은 지배와 통치를 생각합니다.인간은 본성적으로 “큰 사람”이..
교회의 생일 - 요한 15:26-27, 16:4하-15 우리는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되심과 하늘로 올리우심을 믿으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살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 자체와 그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주님의 손이며,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찾아가는 주님의 발입니다. 바울로가 말했듯 우리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을 머리로 삼아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뵙고 따르며 가르침을 받던 작은 공동체의 신앙 운동이 이제는 약 2천년 긴 시간을 뛰어넘고 산과 바다를 넘어 세상에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출발점은 언제일까요? 바로 성령님께서 임하..
부활 속의 공현 알렐루야! 우리교구 위에 부활의 환호성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재, 현실성은 증인들의 눈앞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고린토교회에 사도 바울로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두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나타나심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활과 함께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신 고린토전서 15장, 오늘 전례독서 본문에는 그렇기 때문에 ‘나타나셨다(보이셨다)’는 단어가 6번이나 반복해서 쓰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리차원에서 믿는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생생한 사건이며 실재입니다. 초대교회들, 고린토교회, 고르넬리오 가정교회에서 중요한 것,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
새로움을 주신 당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을 선물하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부활은 우리의 이해의 틀과 사유의 근거를 뛰어넘고, 우리의 경험과 삶에서 나오는 중력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권세를 압니다. 여전히 우리 가운데 어른거리는 죽음의 기운을 알고, 여전히 당신에게서, 이웃에게서, 우리가 되어야 하는 모습으로부터 우리를 갈라놓는 죽음의 힘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포와 탐욕과 불안과 잔인과 교만의 위험을 압니다. 세게 몰아치는 파도와 같은 그들 앞에서 우리는 무력합니다. 그때 당신께서 나타나십니다. 새벽에, 희망을 머금고 밝아오는 모습으로, 어둠 속에서, 돌무덤 속에서 부활을 기다리시다가,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기쁨을 세상에 주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십니다. 나라는 당신의 것이며..
무덤 속 부활 아닌 무덤 밖 부활 살아가며 만나는 일들은 대개 다면적입니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고, 고난과 환희가 혼재하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온통 벚꽃 잔치가 벌어졌지만, 이미 지는 꽃들 또한 허다합니다. 고난의 신비가 없는 부활의 신비는 너무 얕은 강 같습니다. 깊이는 겨우 한 뼘인데 폭이 100미터인 강 같습니다. 그런 강물에서는 물고기들이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부활을 맞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가 깊이 없는 단면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신앙생활이 한쪽 면에 경도되어 묶여있지는 않은지 이번 부활대축일을 맞이하며 깊이 성찰합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며 예수님은 이런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돌을 치워라”, “나오너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예수님은 라자로를 죽음에서 살려내시고, 무덤 밖으..
사두가이파와 부활 사두가이파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대사제였던 “사독”의 계보를 따르는 후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제들이 이 사두가이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유다 최고 권력기관인 “산헤드린”을 휘어잡았고, 전체인원이 2,000명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부와 세력을 과시했습니다. 사두가이파는 기록으로 남겨진 율법인 『모세오경』만을 인정했습니다. 모세오경 이후에 기록된 다른 구약성서나 해석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사, 영혼불멸, 부활과 같은 내용들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의 진짜 관심은 오직 모세오경과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을 지키고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로마제국 식민지에서 힘겨운 인생을 살..
힘과 사랑 우리는 지금 부활절기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 이전에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예수를 우리는 기억한다. 요한18:36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의 왕국 즉 하늘나라는 영적인 세상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러한 영적인 세상을 추구함으로 이세상의 변화를 기대하고 촉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는 한 번도 세상이 너무나 좋아하는 무력이나 힘이나 조직, 위계질서로서 제자들과 따르는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영적인 하늘나라의 방식과 태도로 일관하셨기 때문에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도 감당해 내실 수 있었던 것이다. 영적인 하늘나라의 방식은 억압하거나 지배하거나 군림하지 않는 ..
부활 생명을 믿는 행복의 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무서워서 문을 닫아걸고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를 기원하시고, 당신이 보내어진 것처럼 제자들도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시고, 사죄의 권한을 부여하십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에게 당신의 몸을 만져보게 하시고 의심을 버리고 믿을 것을 요청하시며 보지 않고 믿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밝힙니다. 부활, 평화, 파견, 성령, 용서, 믿음, 생명 등이 본문에 담긴 핵심어들입니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사건에 따라 나열된 듯 하지만, 이 모든 주제들은 하나의 사실에 집중합니다. 바로 예수..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 부활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아두시고 당신을 보낸 이가 누구이며, 제자들 역시 그분이 보내주셨다는 점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아버지가 보낸 사람들이며, 그분 안에 사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는 것에 관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 모두가 진리를 위해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며, 그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에게로 돌아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천년이 넘는 시간을 지켜왔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처럼 예수님이 제자들을 그리고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데 있습니다. 부활의 시간에 우리는 세상 속으로 ..
안식일 다음 날과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 두 가지 사건의 상황은 똑같아 보입니다. 각각 제자들의 두려움과 토마의 의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실상 우리의 바탕에 깔려 있는 두려움과 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의심은 우리들이 일생 달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우리 인간들의 처지이며 실상입니다. 본문은 두려움과 의심이 우리들의 실존적 상황임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이 실존의 한계 속에서 분노와 좌절, 탐심, 질투, 증오, 차별, 폭력이 나옵니다. 오늘 복음 속 두 가지 이야기의 핵심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한가운데 서신 것처럼 우리의 실존 한 가운데 나타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두려움과 의심을 뚫고 나와서 참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