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당신도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니신지요?(마르 12:28-34, 이재탁 요한 사제(대구교회))
2024.11.02
혹, 당신도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니신지요?(마르12:28-34) 사랑의 계명에 공감력이 대단하고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 학자를 보시고 예수님은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서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사랑의 삶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늘나라의 삶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의 사랑을 믿고 실천하여 경험적으로 아는 삶이다. 지식으로 단지 마음의 동조로 끝나는 믿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는 낙오자 삶에 불과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신다.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
최선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 마르 10:2-16 우리는 종종 '적당히 하자'는 말을 사용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으로 만족하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혼 문제가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당시 사회에서 이혼은 주로 여성에게 불리했습니다. 여성들은 경제활동에 제약이 많았고, 이혼한 여성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삶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종교적 권위에 기대어 이혼장을 요청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가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대해 다른 견해를 보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한 몸으로 창조하셨기에 사람이 나누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교회..
사람은 하느님의 것이고, 돈은 카이사르의 것이다 - 마태 22:15-22 저들은 예수님을 세금 논쟁에 끌어들입니다. ‘그렇다.’ ‘아니다.’ 라고 답하는 순간 바로 올가미에 걸려드는 질문을 예수님께 던집니다.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당시 바리사이파는 로마황제의 세금 징수를 거부했고, 헤로데 사람들은 세금을 냈습니다. 세금 징수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두 정파가 예수님을 공동의 적으로 삼고 공격합니다. 저들의 정쟁 안에 예수님을 끌고 들어와 어떻게든 함정에 빠뜨리려 협공합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이의 속마음을 알아보려는 농섞인, 애정어린 질문에 아이는 잠시 곤란한 척하며 “엄마 아빠 둘 다 좋아!!”로..
두려움을 넘어서는 신앙으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마태 10:16) 파견된 제자들이 당해야만 할 박해가 있을 것을 예고합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을 수 없고, 종이 주인보다 더 높을 수 없다. 제자가 스승만해지고 종이 주인만해지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집주인을 가리켜 베엘제불(악마의 괴수)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그 집 식구들에게야 무슨 욕인들 못 하겠느냐?”(마태 10:24-25) 하시며. 예수님께서 마귀 두목으로 취급을 받으신 것처럼 예수님으로부터 파견을 받은 이들도 그런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파견하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26,28,31)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면서 강조하시는데, 이는 박해하려는 온갖 시도에 맞서는 두려움, 육신을 잃을까 하는..
믿음으로 결단하며 나갑시다. 지난 주일은 성삼위일체 대축일이었습니다. 이제 특별한 날에서 평범한 일상처럼 연중주일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늘 1독서는 창세기 12장입니다. 그전 11장은 바벨탑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어를 흩으신 다음 창세기 12장은 아브람이 하느님의 부름받는 소명 장입니다. 아브람은 갈대아라 일컫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하란에서 살았습니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서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신 이때 아브람은 75세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삶이 담겨있는 고향, 친척, 아비를 떠나가라는 이 부름은 지금 현재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몇 번을 ..
삼위일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저는 농사를 짓습니다. 밭작물을 하고, 조그만 무농약 생태논을 합니다. 또한 사과농사도 합니다. 농사는 하늘에 의존합니다. 과학 영농이다 기술 농업이다 말하지만, 햇빛과 비와 바람이 농사를 결정합니다. 현실적으로는 농약과 비료 등 화학이 농사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윤을 목적으로 삼은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불러온, 광범위한 부작용과 악순환을 처리하는 방식에 불과합니다. 착시인 것이죠. 하여간 뿌리고 심고, 가꾸고 거두어들이는 일은 사람이 하지만, 자라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늘의 일입니다. 농사는 하늘의 은총 안에서 이루어져갑니다. 비단 농사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생명 현상, 곧 삶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빚어지는 것임을 농사를 하면서..
협조자 – “진리의 성령”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14: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본인이 어떤 분이신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A⇒B로 이동합니다. 이는 공간의 이동이기도 하고 생각의 이동이기도 하고 생명의 이동이기도 합니다. A⇒B로 이동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길입니다.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하는 것이지요.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면 여러모로 낭패를 당하기 때문에 제일 적합하고 편리한 길을 찾게 됩니다. 두 번째는 가야 할 목적과 명분과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중간에 어려움을 만나면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움직일 수 있는 힘, 즉 생명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길과 목적이 분명해도 건강이 받..
진리와 영원한 생명의 길 지금 제주는 싱그러운 봄이 한참입니다. 곳곳에서 귤 꽃향기가 진동하고 있는 천국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싱그러운 나뭇잎과 향기로운 꽃잎이라도 가을이 되고 때가 되면 여지없이 떨어져 썩기 마련입니다. 우리 인간 역시도 길어야 100년, 때가 되면 소멸되는 자연입니다. 천체天體 안에서 한 점도 못되는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요한복음 14장은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은 멀리 떠나시는 부모의 마음, 걱정된 심정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사두가이파와 부활 사두가이파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대사제였던 “사독”의 계보를 따르는 후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제들이 이 사두가이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유다 최고 권력기관인 “산헤드린”을 휘어잡았고, 전체인원이 2,000명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부와 세력을 과시했습니다. 사두가이파는 기록으로 남겨진 율법인 『모세오경』만을 인정했습니다. 모세오경 이후에 기록된 다른 구약성서나 해석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사, 영혼불멸, 부활과 같은 내용들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의 진짜 관심은 오직 모세오경과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을 지키고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로마제국 식민지에서 힘겨운 인생을 살..
띠를 띠고 등불을 켜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첫째는 허리에 띠를 띠는 것입니다. 이 지역의 옷은 길고 통이 넓어서 여행할 때나 활동할 때는 허리에 띠를 띠었습니다.(출12:11) 띠를 띠는 것은 일 할 자세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등불을 켜는 것입니다. 어두운데서 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행동입니다. “띠를 띠고 등불을 켜라!” 이 명령은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 상황을 먼저 인지한 누군가가, 대개는 리더가 상황을 수습하고 대처해나가는 태도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는지, 그냥 두었을 때는 어떤 피해가 있을 것인지도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또한 짧은 시간동안 발생하는 긴박한 상황은 생명과 연관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사..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요한 6:51) 영국의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NewScientist)가 인간이 가진 잠재능력의 한계를 해석한 ‘인체의 12가지 극한’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인간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최장 1주일까지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최상의 조건에서의 말이지요. 빵은 생명을 연장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입니다. 에너지원이 공급되지 않는 생명은 유지될 수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따라다닌 많은 사람들은 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따라 다녔습니다. 그것은 비단 예수님 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요. 교육이든 예술이든 문화든 종교든 고유의 목적과 상관없이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선택하는 무리들이 늘 있어왔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이것을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