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넘어서는 신앙으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마태 10:16) 파견된 제자들이 당해야만 할 박해가 있을 것을 예고합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을 수 없고, 종이 주인보다 더 높을 수 없다. 제자가 스승만해지고 종이 주인만해지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집주인을 가리켜 베엘제불(악마의 괴수)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그 집 식구들에게야 무슨 욕인들 못 하겠느냐?”(마태 10:24-25) 하시며. 예수님께서 마귀 두목으로 취급을 받으신 것처럼 예수님으로부터 파견을 받은 이들도 그런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파견하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26,28,31)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면서 강조하시는데, 이는 박해하려는 온갖 시도에 맞서는 두려움, 육신을 잃을까 하는..
낯선 이들에게 벗겨지는 몸... 그러나 구원을 보이네 - 김대식 토마스아퀴나스 사제(서대구 교회)
2023.04.04
낯선 이들에게 벗겨지는 몸... 그러나 구원을 보이네 사람들은 과거 신앙을 팔고 예수를 소비했던 사람들 중에 가리옷 유다를 떠올리곤 합니다. 매년 사순시기가 돌아오면 가리옷 유다는 뭇매를 맞고 입도마에 올려져 난도질을 당합니다. 그가 예수를 팔았다는 오명이 2천 년 동안 줄곧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쯤 우리들도 예수를 팔고, 신앙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예수는 죽음의 형장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이 찢겨가면서 삶의 응달진 곳에 구원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삶의 음지가 아니라 양지에서 삶을 꾸려가라고, 볕이 드는 그곳을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을 잘 알기에 피투성이의 벌거벗겨진 몸으로 가르쳐주었습니다. 음지에서 피어난 꾸밈이 없는 진달래가 분홍색으로 물들..
죄는 강한 데서 싹트고 구원은 약한 데서 비롯됩니다! : 김대식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기장교회 보좌)
2022.10.21
죄는 강한 데서 싹트고 구원은 약한 데서 비롯됩니다!(요엘 2,23-3,5) 도대체 죄(Schuld)는 무엇일까요?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법학적으로 여러 학문적 개념으로 규명하려고 해도 명료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기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부정적인 마음과 행위에 대한 규정이라는 것입니다. 약하면 스스로에게 가해(加害)하지만 강하면 타자에게 위해(危害)를 가합니다. 그것은 어떤 정신(Geist; geist)과도 연관이 됩니다.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을 때에 자신 안에 감춰진 또 다른 이름의 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신은 약하기 때문에 안에 있는 부정적인 정신을 통해서 강한 힘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힘과 정신을 주겠다고 합니다. 유약하다고 ..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복음서 본문은 루가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시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본문에서는 나병 환자 열 명에게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나병에서 나으면 사제에게 확인을 받아야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치유하신 후가 아니라 치유하시기 전에 믿음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나병 환자들은 어떤 믿음이 있어서 치유가 되었을까요? 그들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루가복음에서 이 용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에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열 명 중 아홉 명은 유대인이고 한 명은 사마리아인이었는데, 사마리아인만이 예..
통제 & 자유 율법주의자인 회당장이 보여준 태도에서 나타나는 것은 안식일날 일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현재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도 안식일 날은 고쳐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율법을 신봉하는 유다인들이 지키는 여러 율법과 개량된 종교적 법이 있다. 대표적으로 613조와 미쉬나, 미드라쉬등이 있고 그 외에도 생활관습법들이 많다. 율법주의자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고통당하고 외세의 침략으로 지배받으며 수난을 겪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율법을 더 잘 지키지 못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더 많은 율법의 개량을 통해 방대해진 규칙과 조직적인 규제들을 만들어가게 되고 수년간 병을 앓아온 여인을 안식일날 고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의 규제와 통..
“직선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오스트리아 화가 훈데르트 바서는 언젠가 “직선에는 하느님이 없다.”고 했습니다. 직선이란 무엇일까요? 우회를 용납하지 않는 완고함, 다른 사람을 살필 줄 모르고 앞만 향해 달려가는 마음이 아닐까요? 그러나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직선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 우리 마음의 결, 우리 삶의 길, 성공적인 인간관계…. 이것들이 과연 직선일까요? 작도하듯 그어진 완벽한 직선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간, 우리가 지닌 가능성, 우리가 겪는 상황…. 이 모든 것은 천천히 나선형으로 자랍니다. 구부러진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직선 긋듯이 똑바로, 쉽게, 직통으로, 똑떨어지게 하려는 마음은 하느님과 마찰을 빚습니다. 그런 마음을 지니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