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희망 – 마르 4:26-34 희망적인 소식을 듣기가 어려운 요즘입니다. 국내 정치와 안보 문제, 경제적 어려움, 세계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는 분쟁과 무력 충돌, 전 지구적으로 휘몰아치는 기후 위기로 인한 이상 징후가 연일 뉴스를 통해 전해집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천민자본주의의 득세로 부유함이 삶의 질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고, 애초에 공정하지 못한 사회임에도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실패자라고 깔보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쥐어짜 타인에게 ‘있어 보이는’ 삶을 전시하지만, 보여지는 것과 현실의 괴리를 견디지 못해 우울과 불행의 늪에 빠지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너진 개인은 생존을 위해 ..
논리성의 오류, 제 다리에 걸리지 않기 – 마르 3:20-35 토론이나 논쟁의 경험이 있으신지요? 논쟁과 토론에서는 ‘경청’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서로 반대되는 “두” 입장이 충돌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그 다른 측면은 ‘나의 주장이 더욱 타당하다는 점, 반대편이 나보다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정중하게 표현하는 태도를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 설득력은 “상대보다 얼마나 더 논리적이냐?”뿐 아니라 “상대가 자기 주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구약성서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논쟁태도는 곱씹을만 합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사무엘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이 있어야 겠습니다!”라는 그들의 주..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 속에서, “새로”, “다시”라는 단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하거나 혹은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실천은 오늘 말씀 말미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성부께서 성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성자를 믿고 따르는 인간은 구원의 길로 가며, 이 여정 안에서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신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결국, 삼위의 하느님께서는 “함께” 항상 새롭게 거듭날 것이며, 이를 통해 삼위의 하느님께서는 하나임을 드러낼 것을 생각해봅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일구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또한 구원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일 수도 있..
교회의 생일 - 요한 15:26-27, 16:4하-15 우리는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되심과 하늘로 올리우심을 믿으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살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 자체와 그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주님의 손이며,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찾아가는 주님의 발입니다. 바울로가 말했듯 우리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을 머리로 삼아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뵙고 따르며 가르침을 받던 작은 공동체의 신앙 운동이 이제는 약 2천년 긴 시간을 뛰어넘고 산과 바다를 넘어 세상에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출발점은 언제일까요? 바로 성령님께서 임하..
떠난 이의 뒷모습엔 이름이라는 사랑이 - 요한 17:6-19, 김대식 토마스아퀴나스 사제(서대구교회)
2024.05.10
떠난 이의 뒷모습엔 이름이라는 사랑이 - 요한 17:6-19 “참외를 먹다 벌레 먹은/ 안쪽을 물었습니다./ (…) 참회라는 말을 꿀꺽 삼키다가/ 내게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 먼 사람의 뒷모습은/ 눈을 자꾸만 감게 하는지/ 나를 완벽히 도려내는지/ 사랑에도 뒷면이 있다면/ 뒷문을 열고 들어가 묻고 싶었습니다./ (…) 익을수록 속이 빈 그것이/ 입가에 끈적일 때/ 사랑이라 믿어도 되냐고/ 나는 참외 한입을/ 꽉 베어 물었습니다” (정현우, “사랑의 뒷면”,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창비, 2021). 신앙의 빈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이름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맴돌아 이름이 주었던 실제의 말들이 생각나 말들이 퍼지고 그 말들이 입술을 통해서 흘러나옵니다. 뒷면의 문이 열려 말이 새어나와 신앙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