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와 그 자리에 님이 있을 때 - 요한 1:47-51, 김대식 토마스아퀴나서 사제(서대구교회)
2024.09.28
그 때와 그 자리에 님이 있을 때 – 요한 1:47-51 물리적 세계에서는 한 측면을 알게 되면 그 계의 다른 측면의 지식을 배제하게 됩니다. 이것은 물리학자 닐스 보가 주장한 ‘상보성의 원리’라는 이론입니다. 이를 함석헌의 ‘임이 오신다’는 시와 더불어 오늘의 복음을 번안한다면, 님이 오신다고 서둘러 소지를 하고 님이 오신 곳과 님이 거처할/당도할 곳을 계속 생각하며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자리, 자기 자신의 맘, 자기 자신의 때에 대해서는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자기 자신의 맘, 맘이 머물고 있는 지금의 때, 자리입니다. 나타나엘이 머물고 있었던 때, 그 자리를 알고 있었던/보고 있었던(εἶδόν) 것은 과거의 그 때 그 자리는 항상 지금 여기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
판단기준 - 마르 6:1-13 내 키는 얼마나 될까? 나의 재능은 얼만큼일까? 우리는 무엇인가를 가름할 때 그것이 어느정도인지 잦대를 가지고 판단하고 표현한다. 길이, 넓이, 크기 등도 그렇지만 잘하느냐, 잘생겼냐, 부자냐와 같은 것도 어느정도의 기준이 정해질 때 그것을 가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나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정해지게 된다.판단기준이 정해지면 그것을 토대로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을때는 오히려 그 값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예수님이 고향에서 병자 몇사람에게 손을 엊어 고쳐주셨을 뿐 다른 기적들을 행하실 수 없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를 보고 이미 경험한 고향 사람들의 판단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내가..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 마르 4:35-41(이재탁 요한 사제(대구교회))
2024.06.24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 마르 4:35-41 하느님 자녀의 인생은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아 하늘나라 배를 타고 우주라는 바다를, 인생이라는 바다를 둥둥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따라서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광풍 노도가 덮칠 위험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풍랑을 만나 구세주 예수님이 함께 배 안에 있음에도 허둥대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비와 구원의 때이니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2고린6:1,2,11)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도 겁이 많으냐?”,“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제자들을 책망하고 있듯이 우리에게도 묻고 계신다. 한숨 소리가 기도 소리가 되지 못하느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는데(마태27:..
원초적 복음 - 사도 4:32-35 "인간의 무지함과 하느님의 구원의 뜻"이라는 중의적 정의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 부여됐습니다. 이것이 “원초적 복”음이 지니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이것을 알리고 증언하는 자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복음" 뒤에 자신들을 완전히 가려버렸습니다. 교회 제도와 전통은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로를 교회의 기둥으로 세우고 그 권위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제도화되기 이전에 제자들은 철저하게 "원초적 복음" 뒤로 자신들을 가려버렸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일 뿐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이 자신들을 통해 나타났는데도 그들은 사람들이 그 기적에 집중하거나, 사람인 제..
고백을 넘어 실천으로 – 마태 21:23-32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간 맏아들과 가겠다는 대답만 하고 가지 않은 둘째 아들, 이 둘 중에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은 누구이겠느냐?”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말씀하십니다. 어설픈 성경 지식, 왜곡된 신앙으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대사제들과 원로들처럼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한번쯤 이 말씀 앞에 멈추고 우리를 뒤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뉘우치고 일하러 간 맏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받든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뉘우치는 것에 머무..
믿음으로 결단하며 나갑시다. 지난 주일은 성삼위일체 대축일이었습니다. 이제 특별한 날에서 평범한 일상처럼 연중주일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늘 1독서는 창세기 12장입니다. 그전 11장은 바벨탑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어를 흩으신 다음 창세기 12장은 아브람이 하느님의 부름받는 소명 장입니다. 아브람은 갈대아라 일컫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하란에서 살았습니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서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신 이때 아브람은 75세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삶이 담겨있는 고향, 친척, 아비를 떠나가라는 이 부름은 지금 현재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몇 번을 ..
우리는하느님의악기입니다. 종교 철학자 부버는 “하나 될 때 진정한 힘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위대한 지혜서들은 모두 이런 하나 됨을 말합니다. … 악기와 연주자의 관계 역시 이런 하나 됨을 보여 줍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동안 바이올린과 떨어질 수 없듯이 하느님도 생명에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생명 위에 좌정해 있지 않고, 생명으로 연주합니다. 그것은 기계적인 연주가 아닙니다. 거의 자신을 망각한 채 울림에 머물며, 곡에 자신의 목소리를 부여하는 연주입니다. 바이올린의 울림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음성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하나 될 때, 내 인생의 울림은 곧 하느님의 음성이 됩니다. 연주자가 악기의 울림을 추구하듯, 하느님은 우리의 참여를 구합니다. 하느님과 하나 되어 울릴 때,..
마지막 때, 믿음과 사랑으로 주님의 복음을 증언할 때 오늘 복음은 성전 파괴와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고 계신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말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종교의 지도자들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이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로 완전히 파괴될 미래를 보셨다. 그리하여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오늘 우리도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이 시대를 분별해야 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체나 교회도 하느님 앞에 제대로 서있는지 분별해야 한다. 실상 이려니 하였으나 허상이로다! 모든 곳에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자들이 미련하게 깨닫는 안타까움이 만연한 세태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화 중에 종말의 때에 징조에 대해 알기를 원했다..
사두가이파와 부활 사두가이파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대사제였던 “사독”의 계보를 따르는 후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제들이 이 사두가이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유다 최고 권력기관인 “산헤드린”을 휘어잡았고, 전체인원이 2,000명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부와 세력을 과시했습니다. 사두가이파는 기록으로 남겨진 율법인 『모세오경』만을 인정했습니다. 모세오경 이후에 기록된 다른 구약성서나 해석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사, 영혼불멸, 부활과 같은 내용들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의 진짜 관심은 오직 모세오경과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을 지키고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로마제국 식민지에서 힘겨운 인생을 살..
띠를 띠고 등불을 켜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첫째는 허리에 띠를 띠는 것입니다. 이 지역의 옷은 길고 통이 넓어서 여행할 때나 활동할 때는 허리에 띠를 띠었습니다.(출12:11) 띠를 띠는 것은 일 할 자세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등불을 켜는 것입니다. 어두운데서 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행동입니다. “띠를 띠고 등불을 켜라!” 이 명령은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 상황을 먼저 인지한 누군가가, 대개는 리더가 상황을 수습하고 대처해나가는 태도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는지, 그냥 두었을 때는 어떤 피해가 있을 것인지도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또한 짧은 시간동안 발생하는 긴박한 상황은 생명과 연관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사..
왜 예수님을 만지려 하나? (루가6:17-26)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느냐 하면 예수에게서 기적이 힘이 나와서 누구든지 다 낫는 것을 보고서이다. 그때도 지금도 사람들이 구세주 예수님을 찾아온다. 예수님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고, 더러운 악령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 다 고침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도 지금도(사도5:16) 기적의 힘이 나오고 있다. 구세주 예수님께서 영. 혼. 육의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놓으셨다. 하느님 형상을 회복한 주님의 자녀가 하느님 말씀대로 살고자 결단하면 가장 행복한 길이 예비 되어 있다. 문제는 나는 행복한가? 육신과 정신의 고통이 나를 불편하게 하여 나와 가족, 이웃에게 삶의 질을 떨어트리고 있지는 않은가? 다들 그러느니 하고 살고 있으니, 나도 그러느니 하고 살아..
“직선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오스트리아 화가 훈데르트 바서는 언젠가 “직선에는 하느님이 없다.”고 했습니다. 직선이란 무엇일까요? 우회를 용납하지 않는 완고함, 다른 사람을 살필 줄 모르고 앞만 향해 달려가는 마음이 아닐까요? 그러나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직선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 우리 마음의 결, 우리 삶의 길, 성공적인 인간관계…. 이것들이 과연 직선일까요? 작도하듯 그어진 완벽한 직선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간, 우리가 지닌 가능성, 우리가 겪는 상황…. 이 모든 것은 천천히 나선형으로 자랍니다. 구부러진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직선 긋듯이 똑바로, 쉽게, 직통으로, 똑떨어지게 하려는 마음은 하느님과 마찰을 빚습니다. 그런 마음을 지니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