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드러내는 삶” 무안공항 여객기 사고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이들을 주님께서 품어주시기를,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가족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내려 주시기를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확신하며 순례의 길을 갑니다. 옛 신앙인들이 경험한 말씀, 창조된 자연을 통해서 알게 되는 말씀, 우리가 본래 선물로 받았던 마음을 통해서 말씀을 느낍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음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자신의 자리를 소명으로 알고 이 세상을 떠난 분을 소개합니다. 평생을 사제의 그림자로 살아오신 김근애 사모님이 지난주에 하느님 품으로 돌..
장칼뱅의기도 나의 하느님, 나의 아버지, 나의 구원자시여.지난밤과 시작되는 아침의 모든 시간 동안에당신의 은혜를 부으셔서 나를 지키셨사오니, 내가 당신을 섬기는데 완전히 몸을 바치고 당신을 기쁘시게 하도록,당신의 거룩한 뜻에 순종하는 일과내 모든 행동이 당신의 이름에 영광 돌리는 것과내 형제들의 구원을 위한 것 외에는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하지 않겠나이다. 그러므로 이 지상에서의 삶과 마찬가지로당신의 태양 빛을 온 세계에 비추시고,또한 성령님의 조명하심으로 내 지성을 밝히셔서주의 의로운 길로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오, 나의 하느님.내 목표는 항상 당신을 섬기고 경외하는 것이오며,오직 당신께서 주시는 복으로만 나의 유익으로 삼기를 원하고,당신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은 하나라도 행하지 않게 하소서. 이 일들..
내어주는 사랑과 받아들인 사랑 –루가3:39-45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어주는 사랑이 이 땅에 사람이 되시어 우리 눈에 볼 수 있는 존재로 드러나신 사건이 육화의 예수님이라면 마리아는 받아들이는 사랑으로 육화가 이루어지도록 도구적 존재가 되심으로써 협력자가 되셨습니다. 내어주는 사랑과 받아들이는 사랑이 없다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에 나타난 사실을 보면 마리아는 자신이 ‘비천한 신세’로서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느님의 전적인 자비 아래 있음을 분명하고 충분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노래에서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어떤 것도 애써서 얻은 게 아니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흘러나온 “자비, 자비, ..
광야에서외치는이의소리–루가3:1-6 로마 황제 티베리오가 다스리고, 빌라도가 유대 총독이었을 때, 또 세 지방 영주인 헤로데, 필립보, 리사니아 다스리고 있었고, 안나스와 가야파가 대제사장이었을 때, 요한은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트럼프가 아메리카의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시진핑이 중국을 지배하고, 일본이 핵오염수를 방류하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폭격하고, 아둔한 권력자가 계엄농단을 하는 이때에도, 수천 년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온 하느님 말씀은 우리 앞에 도착(Advent)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겹겹이 둘러싼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세련된 불평등과 합법적 차별을 교묘하게 제도화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그 현실에 기대어 호응하거나 아니면 저항하거..
늘 깨어 기도하며 그 날을 구원의 날로 맞이할 수 있기를 - 루가21:25-36(심미경 아가타사제(포항교회))
2024.11.29
늘 깨어 기도하며 그 날을 구원의 날로 맞이할 수 있기를 – 루가 21:25-36 오늘 예수께서 ‘그 때’와 ‘그 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깊은 호흡으로 그 말씀에 머물러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 때’와 ‘그 날’이 지금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나요? 나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 때’와 ‘그 날’을 일상에서도 의식하며 받아들이고 있나요? 나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그 때’와 ‘그 날’을 떠올려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빼앗길 때, 그 날이 덫과 같이 갑자기 들이닥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나요? 나는 지금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고요히 알아차려봅니다. 예수께서는 ‘그 때’와 ‘그 날’에 우리가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빌라도가 예수께 질문했던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하는 질문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후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한 말에서 빌라도는 예수를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어쩌면 유다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나를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가 나의 왕인가?”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왕국은 욕심과 이기심이 난무하는 세상의 왕국이 아니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약자와 강자가 함께 뛰노는, 노예가 해방되고 억울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하느님의 나라를 말씀하신 것이며 그런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하느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하느님의 나라..
평화의 마을에 평화는 없고… - 마르13:1-8 남쪽으로 흐르는 요르단강이 사해와 만나는 지점에서 지중해로 가는 이스라엘 중심부 산악에 위치한 도성 예루살렘은 오랜 기간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이었다.가나안 여부스족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땅을 여호수아가 점령하고 다윗 이후 예루살렘에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지지만, 바빌론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바빌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느헤미아와 백성들은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성전을 재건하지만 ‘평화의 마을’ 에 세워진 성전은 여전히 이방인이 들어오면 사형에 처한다고 경고하고 여인을 대놓고 차별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힘과 폭력, 차별이 당연시되는 성전’이 세워진다. 예수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의 성전이라 불렸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엔 700명의 사제들..
비천한 이를 높이시는 하느님-마르12:38-44 오늘 본문은 성전에서 헌금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많은 헌금을 넣는 가운데, 한 가난한 과부가 자신이 가진 생활비 전부인 두 렙톤을 헌금궤에 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헌금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궤에 넣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단순한 격려나 칭찬 이상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부자들이 풍족한 가운데 여유 있게 헌금할 때, 과부는 가진 것의 전부를 헌금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헌금의 양으로만 따지면 가장 적었지만, 예수님께는 오히려 그 작은 헌금이 가장 크고 귀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에서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지 ..
혹, 당신도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니신지요?(마르 12:28-34, 이재탁 요한 사제(대구교회))
2024.11.02
혹, 당신도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니신지요?(마르12:28-34) 사랑의 계명에 공감력이 대단하고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 학자를 보시고 예수님은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서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사랑의 삶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늘나라의 삶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의 사랑을 믿고 실천하여 경험적으로 아는 삶이다. 지식으로 단지 마음의 동조로 끝나는 믿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는 낙오자 삶에 불과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신다.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
눈을 뜨고 따라나섰다 – 마르10:46-52 앞을 보지 못하는 걸인 바르티매오가 예수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간청하자 예수께서는 그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앞 못 보는 이가 예수님을 통해 앞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메시지는 아닙니다. 자비를 구하며 눈을 뜨게 해달라는 바르티매오의 요청에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구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네 눈을 뜨게 했다거나, 네 눈을 고쳤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살렸다(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눈을 뜨게 되었으니 빌어먹지 않게 되어 굶어 죽을 걱정이 없어졌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바르티매오 사이에 일어난 일은 단순히 바르티매오의 장애를 고친 일이 전부가 아닙니..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께 - 욥기 38:1-7, 34-41 (이신효스테파노부제(주교좌교회))
2024.10.22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께 – 욥기 38:1-7, 34-41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요?우리는 완전한 평야에 있다고 상상합니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1km가 떨어져 있는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만약 그 거리가 5km면 어떨까요?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하더라도 그 거리 있는 사람을 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그 거리가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이라면 어떨까요? 우리는 우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거기 있다고 전해 들을지라도, 그가 있다는 것조차 의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멀어서 그를 느끼는 어떠한 가능성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지요.이제 잠시 시선을 바꿔서 내가 양쪽에 있는 두 사람이 아니라 그 광경을 지켜보는 ‘전지적 작가’라고 상상해보십시다. 그 둘 사이 1km 상공에서 그들..
타자를 위해 내어놓는 삶 – 마르 10:17-31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떠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부터 떠나는가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입니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입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최승자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중의 발췌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어떤 사람이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묻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그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