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대의 용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라고 묻는 베드로의 질문에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는 답변을 주십니다. 이 답변은 무한히 용서해 주고 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을 초월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용서를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통곡하는 지상명령입니다. 복수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면에서는 속 시원하고 후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복수는 대물림이 되어 한쪽에서는 원수를 갚기 위해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말린 쓸개를 옆에 두고, 앉으나 서나 와신상담(臥薪嘗膽)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히게 ..
우리는 새 계약 공동체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 아들로 믿는 사람들,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이를 교회라고 합니다. 복음서 말씀은 교회 공동체의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교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짓게 하는 것에 대해 말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권면하고, 듣지 않으면 두 세 사람이 함께 가서 말하고, 그것도 듣지 않으면 교회차원에 권면하지만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며 출교시키고 접촉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신명기19:16~20 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18절에서는 교회에서 적절한 절차를 밟아 교인을 받아들이거나 출교시키는 것을 하늘에서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합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시작되는 하느님 나라의 현장입니..
하늘나라의 열쇠 오늘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반석”이라 부르시면서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열쇠를 받은 베드로는 이제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 짧은 말씀 속에는 구약시대로부터 이어지는 두 가지의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왕국의 히즈키야 왕이 그의 가장 신뢰하는 신하 엘리아킴에게 다윗의 집(왕의 가문) 열쇠를 줬던 이야기입니다. 힐키야의 아들 엘리아킴은 왕국을 관리하면서 다윗왕가의 영광을 빛내는 중책을 맡아야 했습니다. “내가 또한 다윗의 집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이사 22:22)” 다른 하나는 매고 풀 수 있는 권한입니다. 당시 이..
되돌아봄 2020년은 우리 인류에게 문명사적 전환의 해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더니 이제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와 기후 변화가 우리의 일상을 위협합니다. 게다가 폭우가 끝나고 이제는 폭염이 올 것이라는데 걱정입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낯선 모습을 전합니다. 마귀에 걸린 딸을 고쳐달라는 가나안 여인에게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의 벗이고, 늘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의 편이신 예수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고는 믿기 힘든 내용이며, 여인의 입장에서는 복창 터질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을 통해 진실된..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주로 병든 이들을 치유하고, 귀신들린 이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며 많은 이들을 먹이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요? 예수님의 권능을 보여주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저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바로 ‘현재’ 내가 느끼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임을 보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구원과 행복이 기적 안에만 있는 것일까요? 비록 성경에서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기적을 통해 사람들을 고통에서 외로움에서 소외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지만 복음사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신기한 일들 자체가 아니라 구원과 행복이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설명되..
하느님 나라 비유는 신앙공동체의 이야기 하늘나라는 하느님 나라와 같은 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죽어서 가는 나라(천당)라기보다 현세에 지상에서 이루어져가고 있고, 또 장차 완성될 나라입니다. 세상 정치권력은 드러나 있어서 그 실체를 알 수 있으나, 하느님 나라는 드러나 있지 않아서 - 어쩌면 감춰져 있어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지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이거다. 저거다”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에 비길 수 있다” 또는 “마치 ..와 같다”(개역) 라고 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 누룩, 묻힌 보물과 장사꾼이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골라내는 어부들의 행위를 빗대서 하..
밀 이삭이 팼을 때 가라지 이삭도 드러난다 “밀이 자라서 이삭이 팼을 때 가라지도 드러났다.···· 종들이 주인에게 ‘그것을 뽑아 버릴까요?’ 하고 묻자. 주인은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일러서 가라지를 먼저 뽑아서 단으로 묶어 불에 태워 버리게 하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게 하겠다.” (마태13:26-30) 고 하십니다. 우리 집 아래, 논이 있습니다. 봄에 농부가 물을 대고, 벼를 모종하여 이제 제법 자랐습니다. 농부는 튼튼하게 자랄 벼를 기대하고 가을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가라지가 왠 말입니까? 가라지는 심지도 않았는데 벼들 사이에서 벼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자라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을 때에야 확실히 드러납니다. 주님은 ..
마음을 활짝 열고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마태 4:17)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질서(다스림) 가운데 펼쳐지는 사랑과 정의의 나라는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토록 가까이 있는 하늘나라로 다가서지 못합니다.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것을 떨쳐내지 못하기에, 여전히 관망하며 주저하고 있기에 그러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쉽게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우리의 마음은 긴장 혹은 두려움과 같은 연약함으로 가득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경계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우위에 서고자 노력하며, 그렇게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나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것을 먼저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서로를 비..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17.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편 갈라 앉아 서로 소리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 하며 노는 것과 같구나. 18. 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저 사람은 미쳤다.' 하더니 19.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선행의 실천 보잘 것 없는 사람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 상을 받을 것이다하신 말씀은 기독교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선행이라 함을 성서속의 종교적 특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덕을 세우는 정도의 신앙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한 오류에 빠질 수 있는 우리에게 호세M. 보니노의 ⌜사람됨을 위하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이 선행을 하는 것이 때로 좋지 않은 결과로 빠지는 경우를 모면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들은 어떤 도덕적 문제들에 대해서 “타협”과 “양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 말은 우리가 순수한 “선행”을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더 큰 악을 피하기 위하여 필요악을 저지르는 경우를 당면하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
사랑의 수난, 자발적 숙명 이삭과 이스마엘은 적자와 서자입니다. 일부다처제의 차등적 질서가 자녀에게도 대물림됩니다. 여기에 불행의 원인이 있습니다만, 이것도 다 제한적 환경 안에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옛 문화입니다. 그러나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제도이기에 사람의 마음까지 바로 세우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욕구는 불안과 두려움을 자극하고 여러 명분을 걸어 결국엔파국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소위 첩과 서자로 낙인 된 하갈과 이스마엘을 인간의 명분(혈통) 따위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분쟁의 위험에서 떼어내어 새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끄시고 축복하십니다. 당신을 향해 구원을 부르짖는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연약한것들, 쓸모없다고 버려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