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빛으로 우리 마음을 깨워주소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하느님의 거룩한 빛은 우리에게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려는 열망을 일깨워 줍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변화산에서 특별한 때, 제자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삶에서 육체의 피로, 마음의 피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루가복음은 산 위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의 모습이 변하시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을 때 제자들이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다 합니다. 우리는 늘 깨어서 더 주의를 기울여 하느님의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내면의 무기력함을 깨우는 일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은총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성령의 힘으로 마음과 육체의 피로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우리는 성령께 도움을..
세 가지 비유 하느님 나라의 비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비유는 씨 중에서도 가장 작은 겨자씨, 잘 보이지 않는 누룩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이는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가장 큰 것을 성취하게 하신다. 가장 작은 것 속에 가장 큰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처럼, 누룩처럼 시작되어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 비유는 밭에 묻힌 보물을 찾아낸 사람과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장사꾼이다. 고대에 나그네는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 하느님은 나그네의 초라함 속에 숨어 계셨다. 모세는 광야에서 양을 치는 늙은 목동이었다. 이를 알아본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었고 하느님처럼 섬겼다. 이후 두 사람은 살아서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
은총의 소중함 오늘 창세기 말씀은 인간이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는데 에사오와 야곱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장자권'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뭐라고 합니까? "이렇게 에사오는 자기의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에사오에게 장자권은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에사오와 야곱의 차이는 이를 귀하게 여긴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성인이라면 본인의 의지와 결정으로 그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에사오는 '장자권'을 경히 여겼습니다. 이는 그가 하느님의 은총을 경히 여겼다는 뜻입니다. 실낙원 당한 아담과 하와도 하느님의 말씀을 경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들에게 관대하고 하느님..
멍에와 함께 쉼으로 초대 결혼을 준비하는 이는 축하객으로 누구를 초대할 것인지 정합니다. 요즘 초대장을 전달하는 방식도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가 다릅니다. 언제부터인가 모바일로 받은 초대장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근사한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된 이들은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하지만, 신랑 신부와 함께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멍에를 메고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초대장이라면 그 초대에 선뜻 공감하거나 축하 자리에 가야 하는 고민을 하는 이가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소개하며 우리를 그분에게로 초대합니다. 초대장은 당신이 계획한 일을 하자고 우리에게 권하십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일, 용서하는 일, 치유하는 일’로 온유와 겸손이 마음..
두려움을 넘어서는 신앙으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마태 10:16) 파견된 제자들이 당해야만 할 박해가 있을 것을 예고합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을 수 없고, 종이 주인보다 더 높을 수 없다. 제자가 스승만해지고 종이 주인만해지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집주인을 가리켜 베엘제불(악마의 괴수)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그 집 식구들에게야 무슨 욕인들 못 하겠느냐?”(마태 10:24-25) 하시며. 예수님께서 마귀 두목으로 취급을 받으신 것처럼 예수님으로부터 파견을 받은 이들도 그런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파견하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26,28,31)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면서 강조하시는데, 이는 박해하려는 온갖 시도에 맞서는 두려움, 육신을 잃을까 하는..
교회다움을 세워가기를 예수님의 사역은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고, 그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목자 없는 양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며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들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 말씀하시고는 제자들에게 악령을 제어하는 능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제자들에게 부여하시고 당신의 사역을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추수할 일꾼으로서 교회에게 부여된 능력이고 사명입니다. 교회는 모든 이들이 건강한 삶을 살도록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생명 사역의 전제가 되는 ‘가까이 온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명..
믿음으로 결단하며 나갑시다. 지난 주일은 성삼위일체 대축일이었습니다. 이제 특별한 날에서 평범한 일상처럼 연중주일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늘 1독서는 창세기 12장입니다. 그전 11장은 바벨탑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어를 흩으신 다음 창세기 12장은 아브람이 하느님의 부름받는 소명 장입니다. 아브람은 갈대아라 일컫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하란에서 살았습니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서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신 이때 아브람은 75세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삶이 담겨있는 고향, 친척, 아비를 떠나가라는 이 부름은 지금 현재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몇 번을 ..
삼위일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저는 농사를 짓습니다. 밭작물을 하고, 조그만 무농약 생태논을 합니다. 또한 사과농사도 합니다. 농사는 하늘에 의존합니다. 과학 영농이다 기술 농업이다 말하지만, 햇빛과 비와 바람이 농사를 결정합니다. 현실적으로는 농약과 비료 등 화학이 농사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윤을 목적으로 삼은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불러온, 광범위한 부작용과 악순환을 처리하는 방식에 불과합니다. 착시인 것이죠. 하여간 뿌리고 심고, 가꾸고 거두어들이는 일은 사람이 하지만, 자라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늘의 일입니다. 농사는 하늘의 은총 안에서 이루어져갑니다. 비단 농사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생명 현상, 곧 삶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빚어지는 것임을 농사를 하면서..
일상의 거룩함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달리 말하면 예수의 제자들이 그를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고 그를 증언하면서 교회는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교회는 예수님의 수난, 부활, 승천에 대한 기억을 통해 기쁨의 절기를 보내고 성삼위일체주일과 성령강림대축일을 턴하면서 평주일 연중으로 들어간다. 연중은 교회의 평범한 일상의 절기다. 살아가면서 참 중요한 것은 어떤 이벤트의 날들이 아닌 일상의 날들이다. 축일이나 이벤트가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 오히려 참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린 이 일상에서는 거룩함… 기쁨과 놀라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생일이나, 가령 .....Day, 교회력에서 보자면 예수님의 성탄이나, 부활, 승천일 같은 대축일이 거룩한..
협조자 – “진리의 성령”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14: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본인이 어떤 분이신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A⇒B로 이동합니다. 이는 공간의 이동이기도 하고 생각의 이동이기도 하고 생명의 이동이기도 합니다. A⇒B로 이동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길입니다.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하는 것이지요.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면 여러모로 낭패를 당하기 때문에 제일 적합하고 편리한 길을 찾게 됩니다. 두 번째는 가야 할 목적과 명분과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중간에 어려움을 만나면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움직일 수 있는 힘, 즉 생명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길과 목적이 분명해도 건강이 받..
진리와 영원한 생명의 길 지금 제주는 싱그러운 봄이 한참입니다. 곳곳에서 귤 꽃향기가 진동하고 있는 천국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싱그러운 나뭇잎과 향기로운 꽃잎이라도 가을이 되고 때가 되면 여지없이 떨어져 썩기 마련입니다. 우리 인간 역시도 길어야 100년, 때가 되면 소멸되는 자연입니다. 천체天體 안에서 한 점도 못되는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요한복음 14장은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은 멀리 떠나시는 부모의 마음, 걱정된 심정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 뿐더러(요한10:1-10) 목자와 양의 관계는 생사고락이 걸린 문제이다. 삯꾼 목자는 정식 문으로 버젓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칙, 편법을 쓰고 정상적인 문으로 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 들어가는데 이는 도독이며, 강도다. 이와 같은 속된 목자도 있다는 것이다. 소명이 아닌 삯꾼 목자는 자기 욕심을 채울 때까지 기다리다, 이리가 가까이 오면 양을 버리고 도망간다. 조직체의 상하관계, 신앙의 지도력을 이용하여 갑-질 하고, 자원하는 마음이 아닌 헌신을 신묘하게 강요하여 양들의 재물을 후리는 것이다. 결국은 삯꾼 목자의 영혼은 파리하게 되고 절망 가운데 오래 가지 못하고, 양들도 모이지 않고 도망가게 되는 것이 정상이다. 양들은 삯꾼 목자의 행동과 음성이 귀에 익지 않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