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사랑한 죄를 용서하소서 주님, 지금까지 저는 당신의 영감에 항상 귀를 막았으며, 당신의 계시를 무시하고, 당신께서 심판하신 것들과 정반대의 것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영원하신 아버지께로부터 세상에 전한 거룩한 교훈에 불순종하였고 세상과더불어 안주해 살았습니다. 당신께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지만, 저는 “애통하는 하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요, 위로를 받는 자는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넉넉한 재물을 가진 자와 명예를 누리는 자, 튼튼한 건강을 가진 자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러한 자들을 복받은자로 간주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 이 시간 저는 제가 지금까지 건강을 하나의 복으로 간주한 것은..
하느님의 빛으로 우리 마음을 깨워주소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하느님의 거룩한 빛은 우리에게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려는 열망을 일깨워 줍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변화산에서 특별한 때, 제자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삶에서 육체의 피로, 마음의 피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루가복음은 산 위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의 모습이 변하시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을 때 제자들이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다 합니다. 우리는 늘 깨어서 더 주의를 기울여 하느님의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내면의 무기력함을 깨우는 일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은총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성령의 힘으로 마음과 육체의 피로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우리는 성령께 도움을..
세 가지 비유 하느님 나라의 비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비유는 씨 중에서도 가장 작은 겨자씨, 잘 보이지 않는 누룩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이는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가장 큰 것을 성취하게 하신다. 가장 작은 것 속에 가장 큰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처럼, 누룩처럼 시작되어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 비유는 밭에 묻힌 보물을 찾아낸 사람과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장사꾼이다. 고대에 나그네는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 하느님은 나그네의 초라함 속에 숨어 계셨다. 모세는 광야에서 양을 치는 늙은 목동이었다. 이를 알아본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었고 하느님처럼 섬겼다. 이후 두 사람은 살아서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
기다림과 결단 사이 농부는 농사를 지으며 감사함과 수고로움의 시간을 보낸다. 해와 비와 바람과 구름과 물을 선물한 하늘에 감사드린다. 거름을 주고, 고랑을 일구고, 물길을 내고, 씨앗을 뿌리고, 풀을 뽑고, 열매를 수확하는 수고로움을 보낸다. 수고로움 중에는 인내하며 기다리는 시간도 있고, 언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단하는 시간도 있다. 기다림과 결단! 농부의 큰 수고로움이다. 오늘 마태오 복음서는 수고로운 농부의 이야기다. 늘 그렇듯 예수님의 비유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좋은 방법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유는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 방식. 또한 비유는 듣는 사람마다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는데 좋은 깨달음의 방식이다. 오랫동안 교회는 오늘 말씀 ‘밀과 가라지’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쉽게 깨달을 수 ..
은총의 소중함 오늘 창세기 말씀은 인간이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는데 에사오와 야곱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장자권'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뭐라고 합니까? "이렇게 에사오는 자기의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에사오에게 장자권은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에사오와 야곱의 차이는 이를 귀하게 여긴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성인이라면 본인의 의지와 결정으로 그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에사오는 '장자권'을 경히 여겼습니다. 이는 그가 하느님의 은총을 경히 여겼다는 뜻입니다. 실낙원 당한 아담과 하와도 하느님의 말씀을 경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들에게 관대하고 하느님..
멍에와 함께 쉼으로 초대 결혼을 준비하는 이는 축하객으로 누구를 초대할 것인지 정합니다. 요즘 초대장을 전달하는 방식도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가 다릅니다. 언제부터인가 모바일로 받은 초대장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근사한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된 이들은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하지만, 신랑 신부와 함께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멍에를 메고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초대장이라면 그 초대에 선뜻 공감하거나 축하 자리에 가야 하는 고민을 하는 이가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소개하며 우리를 그분에게로 초대합니다. 초대장은 당신이 계획한 일을 하자고 우리에게 권하십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일, 용서하는 일, 치유하는 일’로 온유와 겸손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