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며 하셨던 첫 인사는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입니다. 예수께서는 같이 울고 웃으며 동고동락했던 제자들, 그랬지만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예수를 등지거나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던 제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하고많은 말 중,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 평화는 어떤 평화일까요? 예수께서는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 우리를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다시 이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무덤 속 부활 아닌 무덤 밖 부활 살아가며 만나는 일들은 대개 다면적입니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고, 고난과 환희가 혼재하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온통 벚꽃 잔치가 벌어졌지만, 이미 지는 꽃들 또한 허다합니다. 고난의 신비가 없는 부활의 신비는 너무 얕은 강 같습니다. 깊이는 겨우 한 뼘인데 폭이 100미터인 강 같습니다. 그런 강물에서는 물고기들이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부활을 맞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가 깊이 없는 단면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신앙생활이 한쪽 면에 경도되어 묶여있지는 않은지 이번 부활대축일을 맞이하며 깊이 성찰합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며 예수님은 이런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돌을 치워라”, “나오너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예수님은 라자로를 죽음에서 살려내시고, 무덤 밖으..
낯선 이들에게 벗겨지는 몸... 그러나 구원을 보이네 - 김대식 토마스아퀴나스 사제(서대구 교회)
2023.04.04
낯선 이들에게 벗겨지는 몸... 그러나 구원을 보이네 사람들은 과거 신앙을 팔고 예수를 소비했던 사람들 중에 가리옷 유다를 떠올리곤 합니다. 매년 사순시기가 돌아오면 가리옷 유다는 뭇매를 맞고 입도마에 올려져 난도질을 당합니다. 그가 예수를 팔았다는 오명이 2천 년 동안 줄곧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쯤 우리들도 예수를 팔고, 신앙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예수는 죽음의 형장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이 찢겨가면서 삶의 응달진 곳에 구원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삶의 음지가 아니라 양지에서 삶을 꾸려가라고, 볕이 드는 그곳을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을 잘 알기에 피투성이의 벌거벗겨진 몸으로 가르쳐주었습니다. 음지에서 피어난 꾸밈이 없는 진달래가 분홍색으로 물들..
파스칼의 기도 주님께서 가신 고난의 길에 서 있는 이즈음에 특히 질병으로 어려움을 당한 이들이 주님을 바라고 은총에 기대기를 소망한다. 주님, 지금의 상태에서 제가 당신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병고 가운데서도 제가 당신을 영화롭게 하게 하소서. 질고의 고통이 없다면 제가 결코 영광스러운 자리에 이를 수 없나이다. 구주이신 당신께서도 제가 고통을 통해서만 영광을 누리기 원하시나이다. 제자들이 당신을 인정한 것은 고통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장차 당신의 제자들을 알아보는 것 역시 고통을 통해서입니다. 저로 하여금 자신의 범한 죄로 인해 받는 악한 가운데 몸과 마음으로 그것을 인내하므로 당신의 제자로 인정받게 하옵소서. 하느님, 당신께 진정으로 드려지지 않고는 아무것도 당신을 기..
생명의 빛 예수 예수님이 태생 소경에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말씀합니다. 소경이 눈을 뜬 ‘실로암’ 연못은 ‘파견된 자’(7절)라는 뜻입니다. 이 파견된 자는 바로 성부로부터 ‘파견된’ 메시아, 예수그리스도입니다. 태생 소경은 치유가 되어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마음 까지 맑고 밝아졌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기적이 이루어졌습니다. 동시에 소경의 신앙도 점점 명백해집니다. 예수님께 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예수를 ‘예수라는 분’(11절) ‘예언자’(17절)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33절)이라고 하고 마지막에 예수님을 만나 ‘주님’(38절)으로 고백하고 그의 신앙이 완전해집니다. 예수님을 완전한 의미에서 보게 됩니다. 소경은 눈이 밝아져 빛을 보고 깨달아 그리..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은 반갑지 않은 만남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사마리아인의 혼합된 혈통, 종교, 문화의 문제로 서로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유대남자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 그 여인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여인의 질문(요한4:9)에 예수님은 자신이 ‘유대인 남자’라는 대답보다 ‘하느님의 선물과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요한4:10)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은 문화적, 역사적 등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유대에 속하신 분이 아닌 하느님께 속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우리를 대표합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정치, 조직, ..